그러지 않는 게 좋았겠지만.

컴퓨터 책상은 바로 베란다 창문 옆에 있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이곳저곳을 클릭하다 보면 바깥의 소리가 들려 온다. 여름내내 개구리 소리를 들었던 것도 잠시, 지금은 빗소리다. 11월 초, 새벽 4시의 빗소리.

최근 이것저것 많은 일이 있었다. 어이없는 일에도 말려들고, 집안에도 조금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올해의 대부분을 쏟아부었고 올해 내로 결과가 나리라 생각했던 일은 내년 초로 미뤄졌으며, 몇 사람에 대해 실망하거나 피하고 싶은 기분을 느꼈고, 아주 오랜만에 잊고 있던 사람의 소식을 들었다. 아주 친하진 않지만 안면이 있는 사람의 부고를 들었다. 깨어 있을 동안은 그런 것들에 대해 가급적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잠들기 바로 전. 바로 그 때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 새 잠이 들고 좋지 않은 꿈을 꾼다. 
그런 식으로 잠을 설치는 것보단, 차라리 개삽질이언정 무언가를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11월, 새벽 4시. 귓가에 들리는 건 빗소리와 평균율 뿐이다. 병신같이 삽질을 하기엔 완벽한 조건. 그럼 삽질을 좀 해야 예의지 하하.

내가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다면 나는 연애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연애가 처절한 실패작이었거나, 혹은 내 남자친구들이 모두 개새끼였거나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그 애들은 대부분 다 괜찮은 애들이었으며, 충분히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고 장점이 있는 애들이었다. 물론 지금 같아서는 절대로 사귀지 않을 애들과 이상하게 얽힌 일도 있었지만 그건 어릴 때의 일이고, 나는 대체로 착하고 예민하며 비교적 정상적인 집안에서 반듯하게 자란, 정치적 관점이 비슷하고, 전반적으로 말이 통하며 자존심이 강하고 똑똑하고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을 사귀었었다. 친구로 사귀기에는 더할나위없는 조건이다. 연애를 하기에도 아마 괜찮은 조건이었을 거다. 그런데 왜? 결국엔 내가 문제지. 왜 아니겠어?

모든 연애에는 끝이 있다. 결혼을 한다고 해도 성공한 연애는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을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의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트라우마 따위가 아니라 그냥 사실을 얘기하는 거다. 오히려 끝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말하자면 언젠가 끝이 날 것이기 때문에 같이 있는 시간을 더욱 더 소중히 여기는 그런 것이었다. 상황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내 나름대로는 잘 해주기 위해 노력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난 기본적으로 내 생활이 너무나 소중한 인간이다. 많은 부분에서 맞추어 나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는 살갑거나 애교가 많은 인간도 아니었고, 지나친 참견은 실례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연애가 아닌 자립이었고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거리감각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 덕분에 연애를 하면서도 많이 외로웠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몫이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문제는 내가 상대편에게도 나와 같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내 남자친구들은 나를 사랑해 주었고, 착하고 다감했으며, 나와 결혼을 하고 싶어했고, 조금 더 오래 사귀기를 원했다. 덕분에 내 연애는 대부분이 몹시 길었고 대부분이 친구의 연장선상이었으며,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 연애를 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록 납득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생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연애가 옳을 리 없다. 

모두가 친구로 시작했지만, 친구가 아닌 채로 끝났다. 가끔 친구로 남는 녀석도 있다. 하지만 예전같진 않다. 어쩔 수 없는 거지. 섹스? 섹스 따위. ㅅㅂ 나이 서른 넷에 이따위로 성욕이 거세될 줄 알았다면 적당히 원나잇이나 하면서 버티는 건데 그랬지... 잠시 눈물 좀 닦고.

다시 얘기하자. 내가 지금 아는 것들을 그 때 알았다면 나는 절대로 연애 따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그 애들과 계속해서 친구로 지냈을 것이다. 가끔씩 만나 맛있는 걸 먹고, 술을 마시고, 시시콜콜한 인생 얘기를 하며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농담을 나누었을 것이다. 그 중엔 결혼을 하고 직장이 생기면서 조금씩 멀어지고 자주 보지 못하는 놈들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쪽을 선택하는 게 '내게는' 옳았던 거다.

친구를 잃는 것보단 연애를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정말이지. 




Glenn Gould plays Bach Well-Tempered Clavier Preludium & Fuga C-sharp minor BWV849.

평균율 중에서도 무척 좋아하는 BWV849. 특히 뒷부분 푸가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평균율은 언제나 옳아.^^


by kyoko | 2009/11/08 04:58 | 개삽질-_- | 트랙백 | 덧글(16)

잡담- 내가 고자라니...

1.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흑.ㅠㅠ
마감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2월로 미뤄지는 바람에 올해 말까지는 싫든 좋든 하던 일 붙잡고 있어야 할 듯.


2. 그래도 더 미룰 수 없어 집안 청소중. 이번엔 그냥 얄팍하게 하는 청소가 아니고 제대로 엎고 있다. 하도 제대로 엎었더니 일주일동안 책장이랑 책상, 서랍장 정리한 게 다야;; 책장을 미친듯이 정리해서 잘 안 보는 책은 전부 본가에 실어다 나르고 덩달아 본가쪽의 책장도 조금씩 정리중이다. 팔아치우든지 버려야 하는 책이랑 DVD가 정말 미친듯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건 다 언제.... 후.-_-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옷도 엎었다. 여름옷은 거의 다 정리했는데 겨울옷은 코트를 옷걸이에 걸어 놓은 게 전부. 니트랑 그 외 잡다한 옷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반 이상을 팔아치우든지 버리든지 하지 않는 이상 아예 놓을 자리가 없다.;;; 나름 계속해서 정리하고 줄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ㅠㅠ
그래도 쾌적한 집을 만들고 싶어서 겨울용의 쿠션이랑 방석도 사고 플랫시트랑 침대커버도 새로 질렀다. 난 정말이지 바스락바스락 햇빛냄새나는 새 이불이 너무 좋아. 깨끗하고 부드럽고 차르르하고 따뜻한 이불이 깔린 넓찍한 침대에서 남자랑 뒹굴면..... 이라지만 난 고자잖아? 난 안될거야 아마ㅠㅠ


3. 사실 할 일이 없다 보니 고자로 사는 것도 크게 나쁘진 않달까-_-;;; 뭐랄까 평소엔 거의 신경쓸 일이 없었는데, 요새 나름 청소의 주간이라 그런지 왠지 이대로 지내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한 고민도 좀 생긴다. 난 고자라는 말이 좋아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를 고자라고 부르는 건 참을 수 없다... 는 아니고.; 신체 건강한 30대 중반;; 의 여성이 이 정도까지 성적 스킨십 및 섹스에 대한 마음이 사그라들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열딸일떡은 아니지만서도 그래도 떡이 안 되면 딸이라도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효 난 심지어는 딸도 안 쳐. 무슨 병에 걸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남성 고자 클리닉은 좀 본 것 같은데 여성 고자 클리닉도 있을까? 산부인과라도 가 봐야 하나? '선생님 성욕이 사라졌습니다 선생님. 개가 물어간 것 같습니다 선생님' 하면... 의사는 날 병신으로 보겠지.-_- 그럼 난 담당 주치의를 바꿔야.... ㅅㅂ. 
사실 이대로도 큰 문제 없이 행복한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근데 이건 결혼했다면 이혼사유......... 흑.


4. 3번을 쓰다 보니 난 조금 있으면 서른 다섯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에;;;;


5. 참, 블로그 상으로라도 인사를 드리는 걸 깜빡 했는데;; 가끔 블로그에서 알게 된 분들이 선물을 보내 주고 계신다. 지난번엔 홍콩에서 잠시 귀국하신 분이 홍콩의 과자를 예쁘게 포장해서 보내 주시고 메모도 같아 주셔서 동네 사람들과 아주 기쁘게 냠냠 먹어치웠다. 늦었지만 정말 감사드립니다.ㅠㅠ 그리고 며칠 전엔 역시 블로그에서 알게 된 모 님이 고사리 말린 거랑 이것저것 챙겨서 선물을 보내주셨더라. 받고 깜짝 놀랐다.^^;; 역시 감사드립니다.(__) 동네 사람들과 나눌 것 있으면 나누고 제가 슥삭 할 건 슥삭하겠습니다 ㅎㅎㅎ 블로그를 하다 보면 이상한 일도 많이 겪지만 그래도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나 힘이 나요.^^ 절 싫어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는 생각하지만-_-;; 그래도 힘을 내겠습니다. 감사해요.^^

 
6. 오랜만에 잡담이네... 짤방도.-_-;;


좋아하는 향수 광고. 겔랑의 모델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입니다. 이 언니 얼굴이 너무 맘에 들어요!^^



  

by kyoko | 2009/11/06 22:09 | 일상 | 트랙백 | 덧글(53)

트라토리아 몰토- 부담없는 점심 코스^^

오늘 올리는 곳은 압구정의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트라토리아 몰토.
지난번에도 가서 즐겁고 맛있게 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점심 세트가 가격대비 성능이 아주 뛰어나다고 해서 신사동에서 약속이 있는 김에 점심에 들러 보았다. 점심 세트는 18000원 파스타 세트와 고기요리가 나오는 3만원대 세트가 있었는데, 이 날은 식사를 하고 바로 또 약속이 있어 술이 필요한-_-; 고기 요리는 피하고 그냥 가볍게 파스타 세트. 파스타 세트 구성은 오늘의 전채- 네댓가지의 파스타 중 선택- 차와 쿠키 이렇게 진행된다. 친구는 지난번에 너무 맛있게 먹었다며 안심 커틀렛을 단품으로 시켰다. 단품 가격은 25000원이었나...-_-;; 단품이다보니 전채나 차 등은 포함되지 않지만 나누어 먹기로 하고 주문했다. 참, 술을 아예 안 마시면 서운해서-_-;; 점심이고 하니 가볍게 글라스 화이트 와인을 두 잔 시켰다. 스페인산 와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름은 까먹었고(쿨럭;;) 글라스 와인은 7천원이니 가격도 괜찮다. 이 집은 하프 보틀도 몇 가지 갖춰 놓은 게 포인트.^^

아래는 사진.^^ 




점심의 기본 세팅. 캐주얼하지만 깔끔하다.


겉은 살짝 딱딱하고 안은 부드러운 빵. 빵은 계속 제공해 주신다.



글라스로 시킨 화이트 와인.



전채 접시. 세트의 전채라고 해도 제법 내용이 실하다.^^ 세 가지의 전채가 나온다. 




참하고 맛있는 시저 샐러드.



브루스케타. 치즈와 앤초비도 너무 맛있고(그야말로 와인을 부르는 맛이다.^^) 토마토와 생바질도 설명할 필요 없을 만큼 훌륭한 조화. 심플하지만 아주 맛있다.^^




잘 익은 멜론에 생햄을 한 조각 얹고 질 좋은 올리브오일을 슥슥 뿌려냈다. 역시 입이 즐거운 메뉴.

 



전채를 비우면 바로 메인. 이건 친구가 시킨 안심 커틀렛이다. 가벼운 샐러드와 살짝 딱딱하게 삶아낸 차가운 감자에 방금 튀겨냔 뜨끈한 커틀렛과 치즈의 향이 끝내준다.ㅠㅠ



부드러우면서도 향긋하고 씹는 식감도 좋아요!^^



이건 메인으로 시킨 파스타. 오늘은 해물이 좋다고 하셔서 오늘의 파스타인 해물 파스타를 부탁할까 했지만;;; 올리브오일 소스의 새우와 루꼴라 파스타를 뚫어지게 보다가 결국 그걸로 낙찰.... 했는데.....

너무 맛있었다!ㅠㅠㅠ 재로가 신선하고 좋은 것도 맘에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면이.....ㅠㅠㅠㅠ 고추랑 마늘을 볶아낸 오일의 맛이 짭쪼롬하게 잘 배어 있는 데다 새우 머리까지 같이 볶아내 풍미가 아주 좋았다. 삶아낸 정도도 딱 좋았다. 최근 먹었던 파스타 중 가장 마음에 들어서 아주 기분좋게 먹었다. 양도 넉넉하다.^^ 



후식으로는 서비스로 받은 티라미스. 딱 홈메이드 풍의 부드럽고 편안한 맛이다.^^



그리고 차와 같이 나오는 비스코티. 딱딱하지만 고소하고 맛있다. 커피랑 참 잘 어울리는 과자.




마지막에는 커피로 마무리. 커피는 조금 더 진한 게 좋았을지도.^^;; 에스프레소로 마무리해도 좋을 듯 하다.


보통 압구정 쪽의 이탈리안이라면 파스타만도 18000원쯤 받는데-_-;; 몰토는 같은 가격에 전채랑 차 등도 포함되어 있으니 가격적 메리트는 확실한 듯. 맛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좋은 맛이다.  아주 화려한 느낌은 없다 해도 정말 즐겁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준비해 주신다. 다음에도 꼭 들리고 싶은 좋은 레스토랑. 가격도 부담이 없으니 추천한다.^^*

by kyoko | 2009/11/06 13:51 | 맛있는 집 맛없는 집 | 트랙백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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