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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제법 많이 온다.
컴퓨터의 화면을 바라보기 싫어서, 하루종일 책을 읽었다. 그러다 밖을 보니 비가 제법 많이 온다. 왠지 나가서 바람을 쐬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공연을 보러 가기로 결정. 트렌치코트와 우산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가 버스를 탔다. 비 오는 날 차를 타고 어딘지 알지 못하는 먼 곳으로 가는 걸 예전부터 좋아했다. 물론 길이 막히지 않고 한적한 곳이어야 되겠지만. 공연장에 도착하니 이미 시간이 조금 지나 있어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1악장이 연주되고 있었다. 그래서 무척 좋아하는 1악장의 도입부를 놓쳤다. 무척 아쉬웠다. 그렇지만 곧 이어 연주되는 2악장의 플루트와 피아노는, 정말 최고였다. 너무나 아름다와서 불길한 기분이 드는 음악. 위태로우면서도 허무하고, 덧없이 꺼져버릴 듯한 느낌이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소리. 그런 것에 애정과 의미를 두는 인생은 편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래서, 심장이 조여 왔다. 모든 클래식 공연에서 이런 기분을 느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끔이나마 조우하는 이 느낌에 중독되어 나는 클래식을 포기할수가 없다. 심장 안쪽의 연한 곳을 어루만지는 듯한 기분은 아직까지 클래식에서밖에 느껴 본 적이 없으니까. 차이코프스키도 멋졌다. 5번은 상당히 마이너한 편이고 해석도 어려운데 아주 멋지게 연주해냈다. 특히 마지막의 4악장의 격렬함은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었다. 지휘자 구자범님은 뭔래 철학과 출신이지만 재능을 인정받아 지휘자가 된 특이한 케이스이다. 곡의 해석과 지휘법 등에서 다른 지휘자들과는 또 다른 특유의 아우라가 느껴지시는 분이다. 가느다랗다고도 할 수 있는 체격이시지만, 파워풀한 지휘법과 거기에 잘 어울리는 찰랑이는 검정 머리카락이 무척 멋지시다. 연주 후의 미소도 무척 멋졌다.^^ 돌아오는 길에 저수지와 커피숍이 보이길래 내렸다. 커피숍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물이 보고 싶어 밖으로 나갔다. 불빛이라고는 커피숍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전부이고 아무도 없는, 깊고 어두운 저수지. 비가 수면을 때리는 걸 한참 보다가 집에 돌아왔다.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쓴다. 내게 있어 글이란 무엇일까. 음악이 될 수 있을까. 다시 라흐마니노프를 듣는다. 아까와 같진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떨림에 근접한 기분. 그런 기분으로 살고 싶어. 아마도, 앞으로도.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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