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7월 25일
요리-예전 글
2004년 봄쯤에 썼던 글.
요리를 다시 할 생각은 없지만 그냥 잊어버리기엔 걸리는 게 많은 기억이라 이글루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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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에서 양식요리사로 2년을 일했다.
하루 15시간 이상 일했고, 한달에 두번 쉬는 힘든 직장이었다.
부자 사장 덕에 신라호텔에서 요리를 배웠다. 일하다 잠깐 짬을 내어 저녁마다 신라호텔 연수원의 언덕길을 올라갔다. 하루 4시간씩 6개월간 프랑스요리와 이탈리아 요리, 일본과 한국의 일품요리를 했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요리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힘들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일한지 5개월정도 지나자 나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만드는 크레이프 슈젯을 먹으러 사장의 부모님이 드나들었고 샐러드와 디저트에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데코레이션도 즐거웠다. 칼이나 불을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도 늘어 다량의 요리를 혼자 만드는 게 가능해졌다. 스프, 샐러드, 메인요리, 디저트의 약식 코스는 혼자 30명분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유명한 레스토랑과 호텔은 거의 다 방문해서 여러가지 요리를 먹어 보고 혀의 레벨을 높였다.
일한지 일년째, 주방장이 말도 없이 그만두었다. 전격적으로 주방장이 되었다. 월급은 그리 세지 않았지만 어린 나이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경력을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었다. 단골손님과 친한 손님도 많이 생겼다. 지오디 손호영씨의 누나인 손정민씨는 특히 상냥하고 예쁜 분이었고 내 요리를 무척 좋아해 주었다. 가게를 그만들 때 선물받은 머리핀과 책은 아직도 잘 가지고 있다. 누워있는 시어머님을 위해 Today's soup을 하루 한번씩 포장해 가시던 교보그룹의 사모님과도 친해졌다. 그 밖에도 여러 유명한 사람들과 안면이 생겨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그 무렵 사장은 광화문 흥국생명에 분점을 만들고 그곳을 맡기겠다는 제의를 했다. 자기 가게에 대한 고민을 하며 체인에 들어갈 사람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창업하는 가게의 메뉴 선정을 해 주는 일도 있었다. 새로운 경험이었고 힘들지만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주방을 맡게 되자 부장, 컨설팀장과의 알력이 생겼다. 아니, 일방적으로 그 쪽에서 나를 견제했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었지만 많은 여자 서빙직원들이 언니로 따르며 의지했고 부장과 팀장이 여자애들을 건드리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애들을 감싸줄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계속 마찰이 생겼다. 사장은 분점을 만드느라 너무 바빠서 가게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나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고, 바빴고, 그래서 지쳐갔다. 몇백만원씩 돈을 들여 신라호텔에서의 기회를 준 사장에게는 미안했지만 가게의 상황이 나를 지치게 했다. 원래 그리 좋지 못한 체력도 한 몫 했다.
2년 가까이 일한 끝에 모든게 피곤해졌다. 한때는 좋아하던 요리도, 내 가게에 대한 생각도, 사람들과의 만남도.
지긋지긋해져서 이제 그만 하자고 생각했다. 언제나 끝낼때는 확실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다. 가게에 폭탄을 터뜨렸고, 내가 떠난 뒤 부장은 가게를 떠났다고 들었다. 사장과 사장 부모는 몹시 아쉬워하며 다른 가게에서라도 도와달라고 말했다. 생긋 웃으며 그러마고 했다.
핸드폰을 바꾸고 이사를 갔다. 친한 언니에게 사장이 나를 계속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난 원래 한번 그만둔 일터엔 놀러라도 절대 다시 가지 않는다.
그 후로 3년째. 난 아직도 요리를 하는 것이 지독하게 싫다. 집의 주방은 더할나위없이 엉망이며, 매일의 식사도 대충 때우고 있다. 일년에 한 두번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는 가끔 본격적인 이탈리안 푸드를 만든다. 그렇지만 그것뿐이다.
오늘 집 안에 굴러다니던 비빔면을 뜯어 끓여 먹었다. 먹다보니 맛이 이상해서 봉지를 살펴보았다. 위의 사진의 날짜가 찍혀 있었다.
2003. 12.26일이다.
이렇게 엉망으로 사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겠지.
일을 그만둔지 3년. 3년간은 약간의 번역과, 많은 양의 독서를 한 게 생활의 전부였다.
아팠고, 그래서 엉망이었다. 둘이 인과관계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차치하고라도 어쨌든 이제는 방을 정리하고 짐을 줄이고 냉장고를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서 다시 요리를 좋아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나 아주 오랜만에 나의 요리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좋은 일일까.
요리를 다시 할 생각은 없지만 그냥 잊어버리기엔 걸리는 게 많은 기억이라 이글루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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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에서 양식요리사로 2년을 일했다.
하루 15시간 이상 일했고, 한달에 두번 쉬는 힘든 직장이었다.
부자 사장 덕에 신라호텔에서 요리를 배웠다. 일하다 잠깐 짬을 내어 저녁마다 신라호텔 연수원의 언덕길을 올라갔다. 하루 4시간씩 6개월간 프랑스요리와 이탈리아 요리, 일본과 한국의 일품요리를 했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요리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힘들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일한지 5개월정도 지나자 나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만드는 크레이프 슈젯을 먹으러 사장의 부모님이 드나들었고 샐러드와 디저트에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데코레이션도 즐거웠다. 칼이나 불을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도 늘어 다량의 요리를 혼자 만드는 게 가능해졌다. 스프, 샐러드, 메인요리, 디저트의 약식 코스는 혼자 30명분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유명한 레스토랑과 호텔은 거의 다 방문해서 여러가지 요리를 먹어 보고 혀의 레벨을 높였다.
일한지 일년째, 주방장이 말도 없이 그만두었다. 전격적으로 주방장이 되었다. 월급은 그리 세지 않았지만 어린 나이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경력을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었다. 단골손님과 친한 손님도 많이 생겼다. 지오디 손호영씨의 누나인 손정민씨는 특히 상냥하고 예쁜 분이었고 내 요리를 무척 좋아해 주었다. 가게를 그만들 때 선물받은 머리핀과 책은 아직도 잘 가지고 있다. 누워있는 시어머님을 위해 Today's soup을 하루 한번씩 포장해 가시던 교보그룹의 사모님과도 친해졌다. 그 밖에도 여러 유명한 사람들과 안면이 생겨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그 무렵 사장은 광화문 흥국생명에 분점을 만들고 그곳을 맡기겠다는 제의를 했다. 자기 가게에 대한 고민을 하며 체인에 들어갈 사람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창업하는 가게의 메뉴 선정을 해 주는 일도 있었다. 새로운 경험이었고 힘들지만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주방을 맡게 되자 부장, 컨설팀장과의 알력이 생겼다. 아니, 일방적으로 그 쪽에서 나를 견제했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었지만 많은 여자 서빙직원들이 언니로 따르며 의지했고 부장과 팀장이 여자애들을 건드리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애들을 감싸줄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계속 마찰이 생겼다. 사장은 분점을 만드느라 너무 바빠서 가게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나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고, 바빴고, 그래서 지쳐갔다. 몇백만원씩 돈을 들여 신라호텔에서의 기회를 준 사장에게는 미안했지만 가게의 상황이 나를 지치게 했다. 원래 그리 좋지 못한 체력도 한 몫 했다.
2년 가까이 일한 끝에 모든게 피곤해졌다. 한때는 좋아하던 요리도, 내 가게에 대한 생각도, 사람들과의 만남도.
지긋지긋해져서 이제 그만 하자고 생각했다. 언제나 끝낼때는 확실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다. 가게에 폭탄을 터뜨렸고, 내가 떠난 뒤 부장은 가게를 떠났다고 들었다. 사장과 사장 부모는 몹시 아쉬워하며 다른 가게에서라도 도와달라고 말했다. 생긋 웃으며 그러마고 했다.
핸드폰을 바꾸고 이사를 갔다. 친한 언니에게 사장이 나를 계속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난 원래 한번 그만둔 일터엔 놀러라도 절대 다시 가지 않는다.
그 후로 3년째. 난 아직도 요리를 하는 것이 지독하게 싫다. 집의 주방은 더할나위없이 엉망이며, 매일의 식사도 대충 때우고 있다. 일년에 한 두번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는 가끔 본격적인 이탈리안 푸드를 만든다. 그렇지만 그것뿐이다.
오늘 집 안에 굴러다니던 비빔면을 뜯어 끓여 먹었다. 먹다보니 맛이 이상해서 봉지를 살펴보았다. 위의 사진의 날짜가 찍혀 있었다.
2003. 12.26일이다.
이렇게 엉망으로 사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겠지.
일을 그만둔지 3년. 3년간은 약간의 번역과, 많은 양의 독서를 한 게 생활의 전부였다.
아팠고, 그래서 엉망이었다. 둘이 인과관계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차치하고라도 어쨌든 이제는 방을 정리하고 짐을 줄이고 냉장고를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서 다시 요리를 좋아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나 아주 오랜만에 나의 요리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좋은 일일까.
# by | 2005/07/25 19:18 | 개삽질-_- | 트랙백 | 덧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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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 저두 2003년 4월로 유통기한이 끝난 아이스티 깡통을 어제 찾아서 버렸는데요. 흑흑 아이스티 먹고 싶어랑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찾으시기를..
(덧붙여, 쓰잘데기 없는 견제는 정말 즐입니다. 정말 해보자는 거냐? 라는생각만 들게되는 경우는 더더욱, 상대가 불쌍해져요..)
약간의 시니컬과 약간의 유머가 잘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됩니다.
더운날 힙내세요..
너무 다재다능한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본업으로 삼고 싶으신건 뭐지요?
(그냥 애완도령육성프로젝트 빼구요. 그건 그냥 프로젝트일뿐이니까... ^^)
그나저나 그런 사람들사이의 알력까지 신경써야 하다니 정말 짜증스러우셨을 것 같네요. 다 쓸모없는 것들인데..-ㅅ-;;
뜻한 바를 행하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후회 없을 한 걸음을 내딛으시길 바랍니다.
괜히 진산님댁에서 요리를 하시는게 아니였군요 (....)
저도 가끔 그렇게 합니다만 대부분 자제하고 속으로 삭히고 혼자서 속으로 죽이는 타입이라 .. [뭐냐 이건-_-]
요리 사진이 가끔 올라올때 대단하신 실력이구나 ..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요리쪽으로 일하신 경험이 있으시네요.
힘내세요~ 새파란 꼴에 고3 수험생 사회경험을 모르겠지만, 해드리고싶네요//ㅅ//~
저도 뭔가 잘하는 일 한두가지 정도 가지고 싶어요..
그 당시 초반엔 좋았지만..뒤엔 그렇게 즐겁지 못하셨지만..그래도 추억이란거죠..나쁜 추억이라도 시간이 흘러..그때 생각을 하면 한번 피식 하고 웃을 수 있는..화이팅입니다~
그나저나, 워낙 다재다능하신 분이라 어떤 분이신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힘내세욧!
저는 지금 하는 일 버리면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부럽습니다.
힘내세요. ^-^
gforce님/수험생이시군요. 힘내세요!
사발대사님/글쎄요^^;; 다 어중간한 재능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요리를 하는 게 아직은 내키지 않네요.
징소리님/예. 집에서 하는 요리는 이젠 그렇게까지 싫진 않아요. 대충 만들어서 문제긴 하지만..-_-;
Cain님/2003년 4월; 더헉;;;
오늘 마트에라도 가서 맛난 아이스티 가루 사서 맛있게 타 드셔요.^^
luxferre님/나중엔 알겠더라구요. 사회생활이라는 게 원래 그런 암투와 견제도 포함된다는 걸-_-;; 이젠 같은 상황이라도 좀 다르게 대처하지 않을까 싶네요.
나그네라..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걸 생각하면 그 말씀이 맞는 것도 같아요.-_-;
맘 편히 사는 게 최고일 듯 싶어요..^^
비빔면... 저도 문득 찬장에서 꺼낸 비빔면이 두개 다 유통기한 1년 반이 지나버려서 --; 버려야 했던 슬픈기억이;;
아니면 이젠 어느정도 벗어났다는 뜻의.. 감정의 잔해들은 있겠지만, 그걸 아무 감정없이 그대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추스렸다는 거도 될듯.. 시간이 약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쩝.. 망각은 신의 선물이다 or 세상사 뒤돌아보니 그랬더라. 라는 느낌의 글이네요.
traveller님/안녕하세요. 어줍잖은 글들인데도 읽어 주신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traveller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RocknCloud님/전혀 굉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어중간한 수준들이라..^^;
가장 하고 싶은 건 꽃뱀을 가장해 돈을 뜯으며 사는 백수입니다.-_-;
요리....참 많은 생각들이 들게 하는 단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