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2월 18일
어느 명절
거리는 한산했다. 모퉁이의 작은 커피숍에 들어가 뜨거운 카푸치노를 주문하고 기나긴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끝나자 차가와진 커피를 단숨에 마신다. 동량의 에스프레소와 밀크와 거품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정류장의 의자는 차갑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하늘의 색깔은 짙은 블루 그레이에서 블루 블랙으로 바뀌었다. 공기는 차갑지만 습도가 높아서 심호흡을 하자 조금은 숨쉬기가 편해졌다. 그러나 뼛속부터 올라오는 한기는 여전하다. 드디어 비가 오기 시작할 무렵 나직한 어둠을 뚫고 버스가 나타났다. 두세명의 승객이 전부인 버스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본다. 버스는 무척 빨리 달리지만 갈 길은 멀다. 유리창에 면도날이 긋고 지나간 것 같은 흔적을 남기던 가느다란 빗발은 조금식 굵어져서 모든 것을 가린다. 고속도로는 한산하고, 가끔씩 붉은 라이트가 옆을 지나가며 공중에 떠 있는 빗방울을 비춘다. 이 길은 끝이 나지 않을지도 몰라. 바깥의 어둠을 보며 나지막히 되뇌인다. 설 선물용의 꿀을 파는 낡은 포터가 갓길에 멈춰서 있다. 딸기도 배도 아닌 꿀이라니. 갑자기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가져왔던 아카시아 꿀에 빠져 죽은 꿀벌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그 벌처럼 꽁지를 까발긴 채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러나 둘의 죽음은 완전히 다르다. 벌의 꽁지에서 흐르는 건 달콤한 꿀이지만 내 까발긴 상처에서 나올만한 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진득하고 비릿한 피 뿐이다. 그러니 다시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스위치를 바꿔 올린다. 난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힘이 나. 십년 전에 살던 평촌의 아파트가 보인다. 그때 저 집에 들어서던 가족들은 이제는 행복해질 줄 알았었겠지. 밝고 따스한 새 아파트. 거실에 장식되어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전구. 웨지우드의 그릇이 가지런히 놓인 식탁. 샐러드와 과일 그릇, 오븐에서 방금 꺼낸 토마토 소스의 라자냐와 로스트 치킨. 그런 걸 둘러싸고 앉아 있었을 때 나는 행복했는지 아니면 힘을 내고 있었는지 이제는 생각이 나지 않아.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어둡고 추운 정류장에 내린다. 길게 빗어내린 머리와 핸드메이드의 소라색 코트는 짙은 안개 속을 헤매인 것처럼 금새 촉촉하게 젖는다. 얼굴은 지독하게 뜨겁고 몸은 부들부들 떨린다.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어두운 아파트에 들어선다. 복도를 걸으며 현기증을 느낀다. 감기 때문이라 믿는다. 그래야 한다.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찾아 현관에 끼우고 간신히 문을 연다. 지독하게 어둡고 추운 현관 안에 들어선 순간 냉기와 어지럼증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그리고 울먹이며 자신조차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 왜 나는? 왜 우리는? 그래서 이제는?
통화가 끝나자 차가와진 커피를 단숨에 마신다. 동량의 에스프레소와 밀크와 거품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정류장의 의자는 차갑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하늘의 색깔은 짙은 블루 그레이에서 블루 블랙으로 바뀌었다. 공기는 차갑지만 습도가 높아서 심호흡을 하자 조금은 숨쉬기가 편해졌다. 그러나 뼛속부터 올라오는 한기는 여전하다. 드디어 비가 오기 시작할 무렵 나직한 어둠을 뚫고 버스가 나타났다. 두세명의 승객이 전부인 버스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본다. 버스는 무척 빨리 달리지만 갈 길은 멀다. 유리창에 면도날이 긋고 지나간 것 같은 흔적을 남기던 가느다란 빗발은 조금식 굵어져서 모든 것을 가린다. 고속도로는 한산하고, 가끔씩 붉은 라이트가 옆을 지나가며 공중에 떠 있는 빗방울을 비춘다. 이 길은 끝이 나지 않을지도 몰라. 바깥의 어둠을 보며 나지막히 되뇌인다. 설 선물용의 꿀을 파는 낡은 포터가 갓길에 멈춰서 있다. 딸기도 배도 아닌 꿀이라니. 갑자기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가져왔던 아카시아 꿀에 빠져 죽은 꿀벌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그 벌처럼 꽁지를 까발긴 채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러나 둘의 죽음은 완전히 다르다. 벌의 꽁지에서 흐르는 건 달콤한 꿀이지만 내 까발긴 상처에서 나올만한 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진득하고 비릿한 피 뿐이다. 그러니 다시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스위치를 바꿔 올린다. 난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힘이 나. 십년 전에 살던 평촌의 아파트가 보인다. 그때 저 집에 들어서던 가족들은 이제는 행복해질 줄 알았었겠지. 밝고 따스한 새 아파트. 거실에 장식되어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전구. 웨지우드의 그릇이 가지런히 놓인 식탁. 샐러드와 과일 그릇, 오븐에서 방금 꺼낸 토마토 소스의 라자냐와 로스트 치킨. 그런 걸 둘러싸고 앉아 있었을 때 나는 행복했는지 아니면 힘을 내고 있었는지 이제는 생각이 나지 않아.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어둡고 추운 정류장에 내린다. 길게 빗어내린 머리와 핸드메이드의 소라색 코트는 짙은 안개 속을 헤매인 것처럼 금새 촉촉하게 젖는다. 얼굴은 지독하게 뜨겁고 몸은 부들부들 떨린다.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어두운 아파트에 들어선다. 복도를 걸으며 현기증을 느낀다. 감기 때문이라 믿는다. 그래야 한다.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찾아 현관에 끼우고 간신히 문을 연다. 지독하게 어둡고 추운 현관 안에 들어선 순간 냉기와 어지럼증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그리고 울먹이며 자신조차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 왜 나는? 왜 우리는? 그래서 이제는?
# by | 2006/02/18 10:23 | 개삽질-_-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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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우울하거나 억지로라도 힘을내야하는 상황에선 자기가 선을 그어놓은 정도까지밖에 힘을 낼 수 없더군요...
말이 좀 애매하네요...무슨일이 있으신가 봐요. 힘내시길...
참, 기분전환삼아 맛난이 모임이나 해요.^^ 맛있는 케키에 밥..-_ㅜ
네가 빠지면 그게 맛난이 모임이냐? 오기 싫다 그래도 억지로 끌고 와서 앉혀놓을겨-_;
Ж가이샤Ж님/에고 이리도 쑥스러울데가;; 감사합니다.(__)힘낼게요.^^
Nariel님/별말씀을요^^;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