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골렛토 감상- 오페라 쁘띠




그간 날이 춥다 보니 잘 안 움직이는 바람에 공연도 자주 보러 안 갔었는데 오늘 오랜만에 오페라 리골렛토를 보러 갈 일이 생겼다. 작년에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같이 보러 갔던 하늬양이 표를 팔랑팔랑 흔들며 꼬드기길래(..)신나서 기어나온 것.
실은 쿄씨.. 베르디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좋아하는 오페라는 대부분 모짜르트와 베르디의 오페라이다. 반면 푸치니는 별로...-_; 푸치니는 토스카만 좋아한다. 그 외에 좋아하는 건 비제의 카르멘 정도일까? 그런데 베르디라니.. 이건 안 갈 수가 없잖아. 덕분에 집에서 겁나 먼 건대입구까지 옷을 갖춰 입고 열심히 기어나갔다. 오랜만에 건대를 가니 이넘의 동네는 더 정신 없어졌더라. 네온이 어찌나 현란한지-_;;  그렇지 않아도 빈혈로 고생중인데 어찌나 어지러운지 영.

나루아트센터는 역에서 나와 청담대교 방면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보인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커피 한 잔 마신 후 공연장에 들어간 두 마리. 얼려? 근데 악기 편성이... 저게 뭐지?? 전자피아노인가? 웬 시커먼 악기 다섯대에 언니들이 앉아 있다. 목관이랑 금관악기는 우찌된걸까 고민하고 있으려니 공연이 시작된다. 헉.... 그건 알고보니 전자악기 '엘렉톤' 이었고 이 공연은 엘렉톤 다섯대로 반주를 하는 이른바 '오페라 쁘띠'였던 것이다.-_-;
그런데.. 이거 영 적응 안 된다. 그래도 유명하다는 오페라는 거의 다 관람해 본 편이고, 좀 실험적인 오페라도 본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노래로 주고받아야 하는 부분도 마치 연극처럼 그냥 대사로 처리해 버리고 유명한 아리아만 원어로 부른다. 무지하게 부조화스럽다. 이런 기분 처음이야.-_;;

노래는 나쁘지 않았다. 워낙에 유명한 아리아가 많이 나오다보니 귀에 익은 것들이 많아서 조금만 실수해도 금방 티가 나는데 큰 실수는 보이지 않은 편. 만토바 공작 역의 테너는 역에 상당히 잘 어울리더라. 평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호색한인 만토바 공작은 도밍고같이 평생 고생 한 번 안 해보고 노래를 부르며 여자를 꼬시는 게 인생의 전부인 것 같이 보이는(...) 리얼 한량 아저씨틱한 분이 낭랑한 목소리로 슬렁슬렁 부르는 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오늘의 테너도 도밍고 과인듯.... 어찌나 느끼한지 보다 닭살이 쫙 돋았다. 특히 여자 가수들을 능숙하게 더듬으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평소에 어떤 분인지 슬적 의심스러위지기까지....(죄송합니다-_-;) '여자의 마음' 을 부를 때 클라이막스의 고음에서 슬쩍 꺾어지는 것 빼고는 전체적으로 제법 잘 소화해냈다고 생각한다. 질다역의 소프라노도 발음은 조금 아쉬웠지만 비교적 매끄럽게 고음처리를 하는 편.
그런데.... 반주가 엘렉톤이다보니 이런 화려한 음색의 아리아를 잘 못 받친다. 다른 오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베르디는 클라이막스에서 악기들이 같이 강렬하게 쫙 올라가는 맛이 있어야 되는데.. 이건 영 심심하니 노래를 못 살린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작은 공간에서 오페라의 엑기스를 보여준다는 기획 자체는 뭐 나쁠 건 없지만 그래도 노래를 살리려면 다른 악기도 조금이나마 같이 편성되어야 할 것 같은데 연주 부분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보니 아쉬운 점이 상당히 많더라. 전체적인 느낌은 공연이라기보다는 쁘띠 부르조아의 살롱 음악회라는 느낌이랄까? 일가친척 음악하는 사람들 좀 모아놓고 한 50평 되는 홀에 아는 사람끼리 조붓하게 앉아 적당히 룰루랄라 하는 느낌.-_;;;; 그냥 베르디의 유명한 아리아를 생음악으로 가볍게 즐긴다는 데 의의를 두면 어떨지 몰라도 일반적인 오페라를 기대했다면 좀 실망할 듯. 그래서 그런지 관객 반응도 비교적 좀 썰렁한 편이었다. 안타깝다.-_-;;



나와서는 속이 또 좀 별로라(흑흑) 사진의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크라프트의 라스베리 치즈 케익을 조금 먹으며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3월은 정말 볼 공연 많더라. 보고싶은 것 다 보면 파산할듯-_;;; 그래도 날 풀리면 또 열심히 보러 다녀야겠다. 클래식 만세 만만세! 특히 3월 18일날의 바흐 칸타타 전곡 연주회! 그거 기획하신 분은 천국가실 거예요!!!







이건 덤으로... 파바로티의 '여자의 마음.' 축배의 노래와 같이 정말 베르디다운 아리아이다.
역시 파바로티보다는 한량모드 온인 도밍고쪽이 더 어울리는 듯.-_;;


by kyoko | 2006/02/22 01:47 | 영화 및 공연 감상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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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6/02/22 01: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kyoko at 2006/02/22 01:56
비공개님/넵^^ 저도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근데 역시 느끼한 건 파바로티보다는 도밍고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볼 때마다 쇼맨십도 엄청난데다 특히 홍혜경님과 같이 불렀던 축배의 노래가 너무 인상적이었던 듯 합니다.-_-;; 그 다음부터 제 머릿속에는 느끼=도밍고가 되어버렸다는;;;
Commented by Catena at 2006/02/22 02:17
방금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 실황 녹음 시디를 듣던 중이었는데(웃음) 그나저나 노래를 대사 처리하고 유명한거만 골라서 부른다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반주는 무려 전자악기...orz
아. 혹시 얼마 전에 어머니가 자는 저를 깨워서 '너 베르디 좋아하지 않았나?'하고 권유해주시는걸 [차라리 모차르트협주곡전곡연주회! 스케쥴 나왔더라!]하고 까탈부린게 그걸까- 하고 잠깐 생각했습니다. 잠결에 들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만약 저 오페라였다면 저도 좌절했을 듯...;(현악기 많이 좋아함)
Commented by 比良坂初音 at 2006/02/22 02:51
카르멘....음악들을 너무 좋아합니다
특히 하바네라 최고~!!!!!!!
하지만 역시 비싼 관람료는 오페라를 볼 수 없게 합..T-T
Commented by 연화 at 2006/02/22 04:14
카르멘...정말 꼭 한번 오페라로 보고 싶어요;
그러나 저번 주 주말에 받아야 했던 월급을 못 받아서 이번주는 내내 알그지..(T_T) 슬퍼요; 문화생활이라곤 하나도 못 하고 집에 처박혀서 쫄쫄 굶...
어서 알바비가 나와서 올해엔 공연들을 좀 보고싶어요.ㅠㅠ
Commented by rumic71 at 2006/02/22 08:14
문득 피델리오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합창의 압박이 좀 있겠지만.
Commented at 2006/02/22 12: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사오시안트 at 2006/02/22 19:17
니벨룽의 반지를 놓처버린 저로선 감상보단 '작년에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같이 보러 갔던' 이란 구절만 자꾸 눈에 들어오는군요.(...)

오페라 쁘띠는 오페라 쁘띠만의 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로서 오버를 좋아해서 일까요? 전자음향 속에 들리는 클래식도 전 좋더군요. 마치 궁정 예복을 입고 햄버거를 먹는...(이건 좀 아니고) 제례 한복을 입고 핫도그를 먹는...(이것도 아니고) 정통 기모노를 입고 츄파춥스를 먹는...

...이것도 아닌데 말이죠.
Commented by 에버마인드 at 2006/02/22 21:51
엘렉톤 반주로 베르디... 으으음~
한번도 들어본 적 없으므로 방정맞은 입은 삼가도록 하겠습니다^ㅂ^;
저는 푸치니가 좋아요~ 특히 아리아 끝날 때 후주가 좌좌좌 좌좡~ 하고 나오는 거 너무 좋아합니다.. orz
Commented by 사이오닉스톰H at 2006/02/22 22:16
난 안타깝게도 오페라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오. (내 첫 오페라는 아껴뒀다;;;; 마술피리로 봐야지. 생각 중) 하지만 확실히 만토바 공작은 도밍고 과가 해야한다고는 생각해.

예전에 카르멘 공연 실황을 보는데 카르멘이 장미를 가슴골- _- 사이에서 뽑는 걸 보고 (그 언니 가슴도 컸어!) '아.. 오페라의 작은 혁신이야' 했는데 요샌 그렇게도 연주하는구나.
Commented by woodstock at 2006/02/24 00:02
다음주말에 하는 중국국립오케스트라 공연은 보러가실 생각 없수? 것두 모차르트 연주하는데
Commented by kyoko at 2006/02/26 20:55
Catena님/앗! 라 트라비아타도 좋죠^^ 리골렛토도 무척 좋아하는 거라 이번 오페라 쁘띠는 저도 좀...ㅠ.ㅠ
현악기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현악기를 무척 좋아하는지라 바이올린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연주화를 가든 현악기 파트에 특별히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어서 더 아쉬웠습니다, 흑흑흑.

比良坂初音님/카르멘 정말 좋죠. 올해도 멋진 카르멘 공연이 있었으면 하는데 아직은 보이는 게 없어 안타깝습니다..ㅜ.ㅜ
대작오페라가 유행하면서 가격이 더 세진 것 같아요. 외국처럼 잘 안 보이는 자리는 저렴하게 나오면 좋을 텐데.. 전 사실 연주만 들어도 행복합니다 흑흑.

연화님/공연이라는 게 워낙에 중독성이 있어서 일정 기간 못 보게 되면 금단현상까지 생기더라구요..ㅜ.ㅜ 어서 알바비를 받으셔서 멋진 공연 많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kyoko at 2006/02/26 21:26
rumic71님/확실히 이것보다는 나았을지도..--;그래도 이 형식 자체엔 그리 긍정적인 인상은 못 받았답니다;

비공개 2님/에고^^;; 그런가요?

사오시안트님/저런; 니벨룽을 놓치셨군요. 전 신들의 황혼만 보았는데 정말 기뻐하면서 관람햇답니다. 발퀴레가 가장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역시 신들의 황혼이 쵝오가 아닐까 생각한다는.. 그 클라이막스로 가는 질주가 넘 맘에 들어요.
전자음악은 저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오페라만큼은 좀 클래시컬한 게 좋더라구요. 그래서 전 그렇게 맘에 들진 않았답니다.
Commented by kyoko at 2006/02/26 21:30
에버마인드님/제 주변에도 푸치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 이상하게 푸치니는 그냥 그렇;; 그래도 음악 듣기는 들으니 공짜표라도 하늘에서 떨어지면 꼭 보긴 볼 듯 합니다.^^;(떨어질 리가-_;)

사이오닉스톰H언니/허걱 우째 그런 일이; 올해가 250주년이니 마술피리도 할 텐데.. 모시고 갈까욤?-_-
만토바 공작은 그 느끼함이 포인트라.. 역시 한량모드 아저씨가 쵝오; 카르멘 얘기 보고 엄청 웃었;;; 오페라의 작은 혁신이라니.. 푸하하하하
글치만 엘렉톤은 느무 약했어요. 흑흑

woodstock/그거 나도 프로그램은 봤는디-_;대체 왜 짱께오케스트라님의 가격이 베를린 필하고 맞먹는거냐;;;
아무리 50%라도 그렇지-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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