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2월 22일
리골렛토 감상- 오페라 쁘띠

그간 날이 춥다 보니 잘 안 움직이는 바람에 공연도 자주 보러 안 갔었는데 오늘 오랜만에 오페라 리골렛토를 보러 갈 일이 생겼다. 작년에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같이 보러 갔던 하늬양이 표를 팔랑팔랑 흔들며 꼬드기길래(..)신나서 기어나온 것.
실은 쿄씨.. 베르디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좋아하는 오페라는 대부분 모짜르트와 베르디의 오페라이다. 반면 푸치니는 별로...-_; 푸치니는 토스카만 좋아한다. 그 외에 좋아하는 건 비제의 카르멘 정도일까? 그런데 베르디라니.. 이건 안 갈 수가 없잖아. 덕분에 집에서 겁나 먼 건대입구까지 옷을 갖춰 입고 열심히 기어나갔다. 오랜만에 건대를 가니 이넘의 동네는 더 정신 없어졌더라. 네온이 어찌나 현란한지-_;; 그렇지 않아도 빈혈로 고생중인데 어찌나 어지러운지 영.
나루아트센터는 역에서 나와 청담대교 방면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보인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커피 한 잔 마신 후 공연장에 들어간 두 마리. 얼려? 근데 악기 편성이... 저게 뭐지?? 전자피아노인가? 웬 시커먼 악기 다섯대에 언니들이 앉아 있다. 목관이랑 금관악기는 우찌된걸까 고민하고 있으려니 공연이 시작된다. 헉.... 그건 알고보니 전자악기 '엘렉톤' 이었고 이 공연은 엘렉톤 다섯대로 반주를 하는 이른바 '오페라 쁘띠'였던 것이다.-_-;
그런데.. 이거 영 적응 안 된다. 그래도 유명하다는 오페라는 거의 다 관람해 본 편이고, 좀 실험적인 오페라도 본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노래로 주고받아야 하는 부분도 마치 연극처럼 그냥 대사로 처리해 버리고 유명한 아리아만 원어로 부른다. 무지하게 부조화스럽다. 이런 기분 처음이야.-_;;
노래는 나쁘지 않았다. 워낙에 유명한 아리아가 많이 나오다보니 귀에 익은 것들이 많아서 조금만 실수해도 금방 티가 나는데 큰 실수는 보이지 않은 편. 만토바 공작 역의 테너는 역에 상당히 잘 어울리더라. 평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호색한인 만토바 공작은 도밍고같이 평생 고생 한 번 안 해보고 노래를 부르며 여자를 꼬시는 게 인생의 전부인 것 같이 보이는(...) 리얼 한량 아저씨틱한 분이 낭랑한 목소리로 슬렁슬렁 부르는 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오늘의 테너도 도밍고 과인듯.... 어찌나 느끼한지 보다 닭살이 쫙 돋았다. 특히 여자 가수들을 능숙하게 더듬으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평소에 어떤 분인지 슬적 의심스러위지기까지....(죄송합니다-_-;) '여자의 마음' 을 부를 때 클라이막스의 고음에서 슬쩍 꺾어지는 것 빼고는 전체적으로 제법 잘 소화해냈다고 생각한다. 질다역의 소프라노도 발음은 조금 아쉬웠지만 비교적 매끄럽게 고음처리를 하는 편.
그런데.... 반주가 엘렉톤이다보니 이런 화려한 음색의 아리아를 잘 못 받친다. 다른 오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베르디는 클라이막스에서 악기들이 같이 강렬하게 쫙 올라가는 맛이 있어야 되는데.. 이건 영 심심하니 노래를 못 살린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작은 공간에서 오페라의 엑기스를 보여준다는 기획 자체는 뭐 나쁠 건 없지만 그래도 노래를 살리려면 다른 악기도 조금이나마 같이 편성되어야 할 것 같은데 연주 부분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보니 아쉬운 점이 상당히 많더라. 전체적인 느낌은 공연이라기보다는 쁘띠 부르조아의 살롱 음악회라는 느낌이랄까? 일가친척 음악하는 사람들 좀 모아놓고 한 50평 되는 홀에 아는 사람끼리 조붓하게 앉아 적당히 룰루랄라 하는 느낌.-_;;;; 그냥 베르디의 유명한 아리아를 생음악으로 가볍게 즐긴다는 데 의의를 두면 어떨지 몰라도 일반적인 오페라를 기대했다면 좀 실망할 듯. 그래서 그런지 관객 반응도 비교적 좀 썰렁한 편이었다. 안타깝다.-_-;;

나와서는 속이 또 좀 별로라(흑흑) 사진의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크라프트의 라스베리 치즈 케익을 조금 먹으며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3월은 정말 볼 공연 많더라. 보고싶은 것 다 보면 파산할듯-_;;; 그래도 날 풀리면 또 열심히 보러 다녀야겠다. 클래식 만세 만만세! 특히 3월 18일날의 바흐 칸타타 전곡 연주회! 그거 기획하신 분은 천국가실 거예요!!!
# by | 2006/02/22 01:47 | 영화 및 공연 감상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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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역시 느끼한 건 파바로티보다는 도밍고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볼 때마다 쇼맨십도 엄청난데다 특히 홍혜경님과 같이 불렀던 축배의 노래가 너무 인상적이었던 듯 합니다.-_-;; 그 다음부터 제 머릿속에는 느끼=도밍고가 되어버렸다는;;;
아. 혹시 얼마 전에 어머니가 자는 저를 깨워서 '너 베르디 좋아하지 않았나?'하고 권유해주시는걸 [차라리 모차르트협주곡전곡연주회! 스케쥴 나왔더라!]하고 까탈부린게 그걸까- 하고 잠깐 생각했습니다. 잠결에 들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만약 저 오페라였다면 저도 좌절했을 듯...;(현악기 많이 좋아함)
특히 하바네라 최고~!!!!!!!
하지만 역시 비싼 관람료는 오페라를 볼 수 없게 합..T-T
그러나 저번 주 주말에 받아야 했던 월급을 못 받아서 이번주는 내내 알그지..(T_T) 슬퍼요; 문화생활이라곤 하나도 못 하고 집에 처박혀서 쫄쫄 굶...
어서 알바비가 나와서 올해엔 공연들을 좀 보고싶어요.ㅠㅠ
오페라 쁘띠는 오페라 쁘띠만의 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로서 오버를 좋아해서 일까요? 전자음향 속에 들리는 클래식도 전 좋더군요. 마치 궁정 예복을 입고 햄버거를 먹는...(이건 좀 아니고) 제례 한복을 입고 핫도그를 먹는...(이것도 아니고) 정통 기모노를 입고 츄파춥스를 먹는...
...이것도 아닌데 말이죠.
한번도 들어본 적 없으므로 방정맞은 입은 삼가도록 하겠습니다^ㅂ^;
저는 푸치니가 좋아요~ 특히 아리아 끝날 때 후주가 좌좌좌 좌좡~ 하고 나오는 거 너무 좋아합니다.. orz
예전에 카르멘 공연 실황을 보는데 카르멘이 장미를 가슴골- _- 사이에서 뽑는 걸 보고 (그 언니 가슴도 컸어!) '아.. 오페라의 작은 혁신이야' 했는데 요샌 그렇게도 연주하는구나.
현악기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현악기를 무척 좋아하는지라 바이올린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연주화를 가든 현악기 파트에 특별히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어서 더 아쉬웠습니다, 흑흑흑.
比良坂初音님/카르멘 정말 좋죠. 올해도 멋진 카르멘 공연이 있었으면 하는데 아직은 보이는 게 없어 안타깝습니다..ㅜ.ㅜ
대작오페라가 유행하면서 가격이 더 세진 것 같아요. 외국처럼 잘 안 보이는 자리는 저렴하게 나오면 좋을 텐데.. 전 사실 연주만 들어도 행복합니다 흑흑.
연화님/공연이라는 게 워낙에 중독성이 있어서 일정 기간 못 보게 되면 금단현상까지 생기더라구요..ㅜ.ㅜ 어서 알바비를 받으셔서 멋진 공연 많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비공개 2님/에고^^;; 그런가요?
사오시안트님/저런; 니벨룽을 놓치셨군요. 전 신들의 황혼만 보았는데 정말 기뻐하면서 관람햇답니다. 발퀴레가 가장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역시 신들의 황혼이 쵝오가 아닐까 생각한다는.. 그 클라이막스로 가는 질주가 넘 맘에 들어요.
전자음악은 저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오페라만큼은 좀 클래시컬한 게 좋더라구요. 그래서 전 그렇게 맘에 들진 않았답니다.
사이오닉스톰H언니/허걱 우째 그런 일이; 올해가 250주년이니 마술피리도 할 텐데.. 모시고 갈까욤?-_-
만토바 공작은 그 느끼함이 포인트라.. 역시 한량모드 아저씨가 쵝오; 카르멘 얘기 보고 엄청 웃었;;; 오페라의 작은 혁신이라니.. 푸하하하하
글치만 엘렉톤은 느무 약했어요. 흑흑
woodstock/그거 나도 프로그램은 봤는디-_;대체 왜 짱께오케스트라님의 가격이 베를린 필하고 맞먹는거냐;;;
아무리 50%라도 그렇지-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