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26일
신촌에서 돌아왔습니다
신촌에서 돌아왔다.
아래 글을 쓴 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청계광장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려 하는데 이상하게도 광화문 방면으로 가는 차는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네 대나 그냥 보내고 간신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중앙시네마 앞에서 버스기사는 승객을 전부 내리게 했다. 광화문이 시위대와 전경차 등으로 막혀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내리기 바로 얼마 전, 버스 바로 앞으로 시위대가 지나갔다. 경찰이 도로를 확보해주고 있었고, 보도쪽 차선 한 선을 차지하고 걸어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한 여자분을 잡고 어디로 이동 중인지를 물어봤더니 지금 전경대가 대부분의 집회장소와 길을 거의 막고 있어서 있을 만한 장소를 찾는다는 설명이었다. 여자분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일단 폼페이동 주민들과 합류하기로 하고, 일행이 있는 청계광장으로 향했다. 가면서 다시 행진 중인 장애우분을(다리를 절면서도 열심히 행렬을 따라다니고 계셨다.) 잡고 어디로 이동하는지 아시냐고 했더니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아무래도 걸어서 동아일보까지 가기엔 좀 힘들 것 같아 택시를 잡아탔다. 하지만 동아일보 쪽으로 진입하기에 몹시 어려움을 겪는다. 일단 종각 쪽은 전경이 완전히 막고 스크럼을 짜고 있어 차는 유턴을 해야 했고, 중간 샛길로 들어가자 골목 뒤엔 전경이 끝이 보이지 않도록 늘어서 있었다. 다들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청계광장에 사람들이 많은 걸까. 하지만 가니 이미 청계광장 쪽에서는 다 빠져 있었다. 시위에 참가한 지인에게 전화를 해 보니 지금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계속 시청- 서울역- 경찰청 등을 도는 모양이었다. 그 뒷부분엔 경찰병력이 붙어서 있어 틈만 나면 시위대를 분리시킨다고 했다. 거리점거를 하고 싶어 한다기보다는 토끼몰이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토끼몰이는 머나먼 신촌까지 이어지고 거기서 폭발했다. 이건 추측이지만 가능한 청와대와 미국대사관에서 먼 곳으로 시위대를 몰고 그쪽에서 진압을 하리라 작정한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폼페이동 주민들은 일찍 집에서 나와 늦게까지 식사도 하지 않은 채라 일단 요기를 한 뒤 시위대와 합류하기로 하고 먼저 와 계셨던 지인 남자분과 통화를 해서 넷이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그 사이에도 시위대는 뺑뺑 돌다가 신촌 쪽으로 가닥을 틀었다. 식사를 끝내고 신촌으로 향했다는 얘기를 듣고 따라잡기 어려울까봐 택시를 타고 먼저 연대 앞으로 갔다. 거기서 다시 위치를 확인하고 신촌 로타리로 내려갔다. 시위대가 있었다. 일단 먼저 도착한 인원은 천명 정도 될 듯한 숫자였다. 중간에서 갈린 듯 싶다.
이제부터는 내 형편없는 똑딱이로 찍은 사진이다.

신촌 로타리에 모여 있다. 신촌 지리를 아시는 분이라면 사진만 봐도 어딘지 아실 것이다. 로타리 가운데의 삼각형 지점에 모두 모였다. 옆쪽으로는 물론 차가 지나다닌다. 도로 가운데 공간으로 나왔지만 전체 도로를 점거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촛불집화가 그렇듯 학생 위주였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분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자리잡고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시위대를 따라온 전경차들이 속속 도착해서 정렬한다. 신촌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뭐 그럴 시간도 없었다. 마치 사람들이 자리잡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배치되었다.

전경 행렬이 시위대쪽으로 접근하자, 선두에 있던 사람들이 여의도쪽으로 길을 틀어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일단의 전경들이 쫓아간다. 졸지에 반으로 분리된 이쪽은 혹시 저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까 발만 동동 구른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그 빈 자리를 대규모의 전경들이 채운다. 빠른 속도였다.

이건 건너편 여의도방면 쪽으로 뛰어간 사람들을 포위하고 있는 병력. 줌으로 당겨 찍었다. 숫자가 많고 거리가 멀어 어떤 일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지만 비명만은 들린다. 때리지 마세요. 그런 소리였다.

하지만 저쪽을 볼 틈도 없이 맥도널드쪽 사람들은 순식간에 인도로 밀린다.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인도로 올라가는 데 걸린 시간은 5분여 남짓. 욕을 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다들 정말 순한 양처럼 어리버리하게 인도 위로 올라갔다. 경찰 병력과 몸싸움을 하려 들거나 폭력적으로 구는 시위대는 적어도 내 시야에선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맥도날드 앞은 금새 밀려난 사람들과 신촌의 밤거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뒤섞여 꽉 찼고, 나는 4번 출구 옆 벤치에 올라가 비명이 울리는 저 건너편을 보려고 했지만 끝없는 전경의 행렬과 닭장차밖에 보이지 않았다. 폭력경찰 물러나라라는 구호를 열번쯤 외쳤다.

경찰이 바로 인도 앞까지 위압적으로 몰려왔고, 차량들이 왔다. 사람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저 건너편을 본다. 위압적으로 밀려오는 경찰 병력을 피해 일행들은 일단 맥도날드 쪽으로 붙었다.
그 순간 정말 순식간에 방패로 스크럼을 짠 경찰들이 맥도날드 쪽 인도에 올라왔다. 인도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인도로 올라오는 병력에 놀라 우왕좌왕하며 갈라졌다. 인도에 있던 사람들이 밀리는 통에 왼쪽에 서 있던 사람들은 차도 쪽으로 내려갈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일행 남자분을 놓쳤다. 연대 쪽 길로 올라가려 하는 순간 경찰이 바로 내 앞을 막았다. 보도에서 아예 빠져나갈 수 없게 길을 완전히 막았다. 경찰의 벽 건너편에는 일행 남자분이 있다. 그 분과 나의 간격은 20센티였는데. 나와 나머지 일행들은 맥도날드 옆문 오목하게 반달모양으로 들어간 곳에 갇혔고, 그분은 저 너머로 넘어가 버렸다. 우리는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경찰의 벽 너머로 울려퍼지는 비명을 들었다.

바로 앞에 경찰들이 줄을 서 있다. 옆 틈으로 나갈 수조차 없게, 완전히 구석에 몰린 상태가 되었다. 빠질 수 있는 길은 아무데도 없었다. 벽 너머에선 잡아가지 말라는 비명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방패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 올라가 있는 남자분은 그만 하라고 계속 소리를 질렀지만 바로 앞의 전경 두엇만이 흘끗 우리를 쳐다볼 뿐이었다. 뒤의 우리는 너무 소수였고 조용했으니(이 구석으로 밀린 사람은 전부 다섯 사람이었다. 쪼개지고, 쪼개지고 또 쪼개졌다.) 그들로서는 특별히 제압을 해야 할 필요는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영원과도 같던 바로 앞의 경찰 바리케이트가 드디어 움직이고 시야가 밝아지자, 그 곳엔 이미 시위대는 없었다. 몇 명 안 되는 시위대는 경찰이 감싸고 있었다.
남은 건 간헐적으로 들리는 외침 소리가 무색한 정적과 운동화 한 짝이었다.
도로 위에서 시위를 한 거 절대 아니다. 인도에 있는 사람들 중 3분의 2가 경찰들이 몰아서 어쩔 수 없이 도로쪽으로 내려왔고, 저 도로는 많이들 아시겠지만 거의 차량 통행이 없는 곳이니 몰아서 제압하기도 쉬워 선택된 게 아닐까 한다. 동행 남자분도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드렸다. 연행되셨다고 한다. 그분은 차도에 내려간 것도 아닌 그저 인도에 있었는데도. 그냥 그렇게 너무나 쉽게 잡혀가서 닭장차 안 한 구석에 있게 되었다.

여경들이 다시 우리 앞에 와서 섰다. 건너편 인도에 있는 시위대도 정리되는 중이다. 길 가는 사람들은 발을 멈추고 지켜본다.

경찰병력이 정리되고 나뉜다. 아까 인도로 올라오는 경찰병력에 갈린 시위대 중 일부인 50명 정도가 연대 안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경찰병력 중 일부는 연대 정문으로 향했다. 어떤 어머니는 아이를 잃어버리셨다고 한다. 저쪽에서 어떤 여자가 울고 있다. 바닥엔 애처롭게 굴러다니는 운동화가 한짝 더 있다. 두 운동화는 짝이 맞지 않는다. 그리고 신촌으로 출발하면서 네 명이었던 우리 인원은 세 명으로 줄어 있다.
이 모든 건 약 30분 정도에 걸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합류한 건 12시 반. 상황이 정리된 건 한시쯤. 아주 긴 30분이었다.
맥도날드 앞, 시위대로 추정되는 남은 인원은 겨우 50명도 채 안 되었고, 그마저도 두세명씩 흩어져 누가 시위대이고 누가 신촌에서 즐겁게 놀던 사람들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경찰들도 마찬가지인지 남은 인원들은 진압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어쩜 이렇게 맥없이, 산산히 갈라지고 저항도 없이 잡혀가게 된 걸까. 우리는 잘 발라진 생선뼈 같다는 농담을 했다. 큰 가시도 아니고 지느러미쪽 작은 가시. 그냥 젓가락만 톡 대면 떨어져 나가는 부드럽게 구워진 갈치구이 가시를 바르는 게 시위대를 갈기갈기 찢는 것보다 어려울 것 같아. 그냥 계속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 멀리선 다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비명을 경찰이 감싸고 있었다.
다시 경찰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앞에 섰다. 꽤 긴 시간동안 그러고 있었던 것 같지만 역시 십분 정도였던 것 같다. 전경들과 가끔 눈이 마주쳤다. 어리고 피곤해 보였다. 한참을 그러고 서 있다가 한시가 조금 넘어 전경들은 답답해보이는 닭장차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래 너희도 내일 일과도 있는데 얼른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자고 싶겠지. 아직 한시 십분밖에 안 됐고 우리는 너무나 나약해서 너희가 몇 번 방패를 휘두르고 밀치기만 해도 그냥 한여름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버렸으니 싱겁기도 할 거야. 비교적 일찍 끝났으니 얼른 들어가 잘 수 있게 되어 다행이겠지. 근데 우리는 너희만큼도 잠을 못 잘 것 같아. 그냥 오늘 본 것들 때문에 그렇게 되었어. 난 최루탄 냄새는 중 3때 서울역 근처로 일러스트집 사러 갔다가 우연히 맡은 게 전부고. 그게 강경대군 때문이었다는 걸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고. 뭐 암튼 그래. 난 그냥 이쁜 가방이랑 구두 좋아하고, 시시껄렁한 색스런 농담 좋아하고 세상을 살면서 심각해질 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식의 소위 사람들 말하는 된장녀 언니야. 그리고 너희가 잡아서 차에 실은 사람들도 대부분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그런 사람들일 거야. 빨갱이도 아니고, 불법 폭력 시위 그런 것도 아니고, 경찰과 대치할 줄도 모르고 손 대면 그냥 맥없이 끌려가는 순진하지 짝이 없는 그런.
그런 사람들인데도 내일 아침 신문과 뉴스에선 배후가 있다고, 경찰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계획적으로 도로를 막고 불법시위를 했다고 얘기하겠지. 그냥 이제 우리 나라는 다시 그렇게 되었어. 그래서 잠 못 자겠어. 나같은 불성실한 된장녀라도 쳐 기어 나와야 되겠지 싶다고.
우리는 경찰들이 대부분 철수한 다음에도 잡혀간 사람이 걱정되어, 이렇게 차마 자리를 뜰 수가 없어 그냥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게 2008년 5월 26일 새벽을 보내고, 귀가했다.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이 끝은 아니다.
# by | 2008/05/26 05:24 | <임시>촛불문화제 | 트랙백(3) | 핑백(2) | 덧글(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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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오늘 가야겠습니다.
그리도 큰탈 없으셨다니 다행이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윗 글을 쓸 때 저는 전혀 침착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데, 왠지 울고 싶더군요. 그랬습니다.
그래도 설마설마 하던 일을...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수준을 넘어, 언제나 상상했던 이상을 보여준달까.
머릿 속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한번 열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아 =_=
정말 이게 무슨 일인지...
안타깝네요.
앞으로가 더 문제인데... 정말 걱정스럽네요..
수고 많이 하셨어요...
나라가 어찌 돌아가려 하는지...후우.
속상해 죽겠네요.
그래도 별일없이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달랑 5개월인데...-_-;;;
어쩌죠;;;
점점 무서워지는 현실...ㅠㅠ
잃어버린 10년 어쩌고 노래를 불러대더니 아예 20년을 되찾아버리는군요. 하아...
다행이 큰 사고없이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그 밤에도 부산에서 시위하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들 있었는데
청계광장으로 다시 모인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가 없었어요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프락치에게 몰리지 말고 계획적으로 해야될텐데 아 정말 가슴이 답답하네요
잡혀가신 분들은 어떡게 될런지 너무 걱정되네요..
연세병원쪽에서 세명정도 연행되는것을 봤는데...
정말.. 이 기분이 어떤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무서웠어요,.. 남자지만..쪽팔리지만...정말로;
현재의 집회 인원들은 조직이고 경험이고 없기에 저런 노련한 몰이사냥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소 아는분도 아니건만 무사히 돌아오셨다니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덧붙이자면 꾸준히 삭제신공을 발휘하신건지 비로그인을 차단하신건지 몰라도 댓글창이 유난히 아름다우시네요
정신 내놓고 살면서 귀는 뚫어두려니 참 힘들더군요. ㅠㅠ
무사하시다니 일단 다행이고요... ㅠ_ㅠ
연행되신 분들도 모두 무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순식간에 30년 전으로 타임워프 한 것 같습니다..
나라꼴이 참 걱정입니다.T_T
촛불문화제만 1번 가보고 안가고 있었는데...
다시 참가할 시기가 된 것 같네요.
외국 언론에는 어떻게 보도될 지 정말 궁금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로요.
저도 갈께요.
친구에게 연락해서 서울역이랑 남대문쪽에 사람들있다는 말을 듣고 시청쪽으로 갔는데.. 그쪽에서 만난분들이 쁘락치들이 선동해서 사람들이 시청앞에 안있고 명동쪽으로 가고 그랬다고 하시더라고요.. (명동가다가 찢어진거 보니.. 쁘락치들 맞는듯해요..) 그래서 시청쪽에 있다가 회사때문에 할수없이 집에왔는데.. 오고나서 인터넷 보고 정말 참담했어요....
괜찮으실지 걱정했는데 일단은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다행이에요. 근데 연행된 일행분은 어찌 되신 건가요...휴
이제 광우병이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말로만 듣던 80년대가 이랬나싶습니다. 무서워요.
전 미국에 있어서 안먹지만 제 이쁜 조카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군대갈 남친.
그들에게 미친소를 먹이지 말아주세요.
http://www.sealtale.com/# 여기 가면 진짜 이글루메인에 촛불 붙이는 방법까지 다 나와 있어요 ㅠㅠㅠㅠ 광고 아닙니다. 제 이글루와서 보고 가세요.
촛불 붙어 있습니다. 이글루가 밝게 빛나는걸 보고 싶습니다.
수고하셨다고,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주말 내내 방콕한 제가 그럴 말씀을 드릴 자격이 없네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이오공감에 추천글 올릴게요.
그나마 다행이기는 한데(알려지기라도 하니까...)
대체 인권위라는 쓰레기 단체들은 뭐하는걸까요?
이런데에서 보호되어야 할 인권이 아니었던가요-
구체적으로 뭘 잘못했다 이것도 아니고, 어디서 바쁘게 뭘 하고 있든 당장 나 안 도와주면 쓰레깁니까? 생각을 좀 하고 말을 하세요. 괜히 적만 늘리지 말고.
집회참여자들은 생초보지만 진압경찰 수뇌부들은
시위진압 초고수들입니다..
//펌//
혹시라도 시위 중 경찰 등 공권력에 연행되는 경우입니다.
(여러분을 형사처벌하려면 증거가 필요한데,
경찰이 하는 것이라고는 옆에서 채증(증거수집)하는 조가 사진을 촬영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사진은 증거로 쓰이는 조건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여러분은 발뺌하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만,
법률 지식이 없는 일반 시민은 수사기관 앞에서 신문을 받을 때에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함부로 진술하여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자백을 해 불리한 증거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하십시오. 민변에서도 이렇게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연행될 경우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인 '진술거부권(묵비권)'입니다.
수사기관이 국민을 연행하면서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선임권을 고지하지 않을 시 불법연행이 됨은 물론이며 여러분은 이 권리를 행사할 권리가 있습니다.
법은 또한 진술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하여 불리한 간접증거로 참작하거나 소위 '괘씸죄'를 적용해 형량을 높이는 등의 불이익을 가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경찰은 연행 뒤에 피의자신문을 한답시고 컴퓨터 앞에 앉힌 뒤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묻겠지만('인정신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조차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찰이 "이름!"하고 물어도 이름도 말하지 마십시오.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는 촛불시위 중 연행된 분들을 위하여 변호단체를 구성하였습니다.
민변의 전화번호는 02-522-7284입니다.
시위 나가실 때 번호를 꼭 저장해서 가십시오.
연행되면 즉시 이곳으로 전화하여 도움을 요청하고,
"변호사가 올 때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겠다"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수사기관은 변호인과의 통화를 엿들을 수 없으므로(변호인과의 접견교통권) 경찰관이 통화내용을 들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물러나라"는 요구를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소중합니다. 폭력시위대, 불법시위대로 매도당해 공권력의 칼날에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꼭 명심해주십시오.
이상입니다.
그리고 이 게시물은 무단전재 배포 허용입니다. 마음껏 퍼뜨려주시고, 추천해 주십시오.
될 수 있으면 오늘도 연행될 지 모르는 선량한 시민들을 위하여
베스트 노출을 계속 유지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신으로 제가 얼마 전 만들어두었던 10대들의 집회참여에 보답하는 동영상을 하나 선물로 드리고 갑니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는데 마음에 드신다면 마음껏 퍼뜨려주십시오.
제가 어젯밤 청계광장에서 말씀드렸던 헌법전문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은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는 고 조지훈 시인의 시입니다.
다음에 올린 것은 약간 급하게 만들었던 것이고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dbY3MNCgzfg$
유튜브에 새롭게 올린 것이 좀 손질하고 다듬은 것입니다.
http://kr.youtube.com/watch?v=LSbSB-We-A0
//
죄송하구요...
조심하세요 ^^
저도 움직여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