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01일
5월 31일에서 6월 1일에 걸친 광화문 이야기.
촛불집회 다녀왔다. 가기 전 반농반진으로 닭장차 투어 얘기도 꺼내고 우스갯소리도 했지만 사실 나는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엠비가 돌아오고 나서 바로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 이미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진 신촌을 경험한 나로서는 그 전 이틀간 나름 평화롭게 시위가 끝난 걸 알고 있었어도 자꾸 좋지 않은 일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을 보게 된다.
처음 모인 곳은 시청이었다. 최근 무리한 탓인지 갑자기 하혈을 해서 급히 생리대를 사고 약을 먹는 등 거의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그래도 일년만에 대전에서 올라온 친구도 볼 겸 해서 집에서 조금 일찍 나왔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건 일곱시가 좀 넘은 시간. 이미 시청 앞 광장은 가득 차 있었고, 광장 진입 시도도 하지 못한 채 전철역 입구 부근에서 계속 지켜보았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음악도 잘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두시간 정도 버텼다. 주변엔 그런 지루한 상황을 참지 못하고 도로 가시는 분들도 꽤 많았다. 그들이 주장하듯 우리에게 배후가 있다면 저런 음악을 틀어주면서 이 많은 사람들을 두시간씩 세워 놓을 리 없겠지만 모두들 그냥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서 있거나, 돌아가거나, 지루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주변을 돌거나 하고 있었다.
움직이기 시작한 건 9시쯤으로 기억한다. 잠시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홀로 근처 KFC로 가서 2층에 앉는데 드디어 촛불의 행렬이 시작되는 것이 창 밖으로 보였다. 일행들에게 전화하니 아직 그쪽은 움직이지도 않는 상태. 정말 많은 사람들이었다.
아래는 사진과 함께.

인파는 끝이 없었고 모두들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은 명동을 지나 종각으로 향했고, 자연스럽게 조계사 뒷길 안국동 사거리쪽으로 향했다. 조금만 더 행진을 빨리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그 지옥같던 밤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잘 모르겠다.

지나가던 차에선 이렇게 피켓을 흔들어 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우리가 행진을 하는 것 때문에 불편함이 많으셨을 텐데. 참 고맙다.

지나가다 보니 이런 글을 붙여 놓은 포장마차도 만날 수 있었고

닭장차에는 이런 것도 붙여져 있었다.

다들 그렇게 종각을 지나 안국동 사거리까지 왔는데 광화문 방면은 닭장차로 틀어막혀 있었다. 그리고 이미 닭장차가 여러 대 줄지어 서 있었다.
이곳에서 씁쓸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에쿠스를 탄 중년 커플이었는데, 사거리에서 광화문쪽으로 좌회전을 시도하여 주변에 계신 남자분께서 그쪽은 전경차로 막혀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악을 쓰며 너희가 막았잖아 이 거지새끼들아! 를 운운하며 악을 쓰기 시작. 뒷좌석 문도 열리며 생전 고생 한 번 안 해봤을 것 같은 중년 여자분이 악을 쓰며 삿대질과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니들은 에비애미도 없냐 뭘 잘한다고 기어나와서 길을 막고 지랄이냐. 없는 것들이 그냥 쳐 먹고 살지 운운. 먼저 길을 알려주던 남자분도 발끈하셔서 큰 싸움이 되려는 걸 뜯어막고, 그 커플을 말리던 남자분도 화가 나는지 그냥 가라니까! 하면서 차에 밀어넣기를 수 회. 싸움이 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급하게 주변 남자분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분들께 지금 이 차가 정독도서관 진입로를 막고 있으니 일단 진행하시라고 그랬더니 나한테도 바가지로 욕을 하더라. 나도 욕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싸우면 안 된다는 일념에 꾹 참았다. 그러다 결국 교통경찰이 다가오니 그 둘은 황급히 문을 닫고 출발하더라. 에쿠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해했다. 그래. 너희같은 것들이 뽑아놓은 쓰레기 때문에 지금 우리 없는 사람들은 걱정하시는 아버지 어머니 두고 이 밤에 나와서 너희한테 에미애비도 없냐며 쌍욕을 들어쳐먹고 이러고 있다. 씨발 세상 참 좆같아 글치?
그 쪽에서 지루한 대치를 하다 하나둘씩 사람들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더니 효자동쪽 뚫고 대치중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 쪽으로 합류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해서 일단 종각쪽으로 다시 내려왔다.

아랫쪽에선 살수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불안했지만 지금까지의 시위에서도 계속 살수차는 등장했었다는 생각을 하며 그냥 넘어갔다. 한참을 뺑뺑 돌았지만 만나는 사람들마다 진입로라 막혔다는 얘기를 해서 결국엔 아까 그 안국동 사거리로 다시 갔다. 그런데 그 사이 광화문쪽을 막고 있던 버스가 없어졌더라. 그때 시간은 11시 반쯤. 청운동 경찰저지선은 뚫었고, 삼청동은 미는 중이라는 문자가 들어왔다. 황급히 언덕을 넘어 내려가니 동십자각 근처에 아래와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저 길은 프렌치 레스토랑 아따블르 갈 때 자주 지나다니던 길이었는데. 예쁜 길이라서 나름 좋아했는데. 이젠 다시는 기분좋게 저 길을 지나다니지 못할 것 같다.
일단 광장에 있던 시위대들은 대열에 따라 효자동, 경복궁 옆 길, 그리고 동십자각길 이렇게 세 군데로 나뉘어 W형태로 포진, 압박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계속해서 확실하게 본 동십자각만 놓고 애기하자면 역시 시위대의 폭력은 없었다. 일단 앞쪽에 계시는 분들이 여자분들이 무척 많았고, 어린애들도 끼어 있어 몇 군데 언론에서 얘기하듯 돌을 던졌거나(광화문에 돌이 있긴 한 건지 묻고 싶다.) 무리하게 진입을 하려 하거나 한 적은 없다. 그냥 지리하게 대치했을 뿐이다. 아마 살수차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대치하다 해산했을 것이다.
그리고 12시 반쯤.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정말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치게 한, 그래서 우리 모두를 끓어오르는 분노로 집에 가지 못하게 한 살수가 시작되었다.


저기 안엔 나의 친구들이 잔뜩이다. 그들은 다 여자다. 여중생, 여고생, 어린이도 많았다. 거기에 인정사정없이 물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아무도 피하지 않았다.
비폭력, 쏘지마를 외치면서 그냥 그대로 차가운 송곳 같은 그 물을 다 맞고 있었다. 너무 순진할 정도로.

황급히 현장으로 달려가는데 뒷쪽으로 경찰들이 진입했다. 그 순간 뒷쪽 시민들은 경찰 진입을 막기 위해 재빨리 뛰어가 인간 바리케이트를 쌓았다. 다행히도 경찰들은 다시 뒤로 돌아서 아랫쪽 골목으로 돌아갔다. 호주머니에선 계속 핸드폰이 울린다. 살수 지대 맞았다고, 너무 춥다고 하는 zip0080군의 문자. 집에서 중계를 보며 계속 걱정하는 앨리스와 H언니의 문자. 효자동 쪽에선 소화기도 살포했다고 한다. 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된 걸까.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걸까.
다시 살수는 시작되고 구급차가 계속 왔다.

살수를 맞고 완전히 탈진한 여학생이 들것에 실려 나갔다. 가녀린 아가씨인 지인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젖어 오늘오들 떨었다. 다른 곳에 있는 내 친구들에게서도 계속해서 문자가 온다. 핸드폰 배터리는 거의 떨어져 간다. 지인분께 따뜻한 걸 마시게 해 드려야 할 것 같아 미친듯이 편의점으로 뛰었다.

조계사 뒤 안국 사거리까지 가다 언덕길 아래를 보니 가녀린 아가씨들이 혹시나 뒤로 치고 들어올지 모르는 전경을 막기 위해서 손을 잡고 서 있다. 남성분은 몇 분 되지 않았다.
왠지 눈물이 났다.
편의점에다 일단 배터리를 맡긴 후, 뜨거운 걸 사서 다시 대치중인 동십자각까지 뛰어가 음료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다시 배터리를 찾으러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뛰고 싶었지만 다리가 너무 무거웠다. 대체 얼마나 걸은 걸까.

하지만 핸드폰 배터리를 찾아 나오자마자 정독도서관 길로 기나긴 전경의 행렬이 들어가는 걸 보고 다시 저절로 발은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대치중이었지만 인원은 조금씩 줄고 있었다. 벌써 세시가 넘은 시각. 다시 전원을 켠 핸드폰에서는 두시부터 강경진압을 시작한다는 문자들이 쏟아진다. 왠지 정신이 아득해진다.
계속해서 연락을 한다. 두시 반에서 세시 사이, 경복궁 담벼락 쪽에서는 집중 살수를 시작하고, 효자동에서는 전경들이 시민을 곤봉으로 구타하고 있단다. 효자동에서 광화문으로 밀고 내려오면 마지막은 내가 있는 곳, 동십자각이다. 언제까지 버텨야 할까.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전부 피곤한 기색이지만 그래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한밤중인데도 방송을 보고, 이불이랑 옷가지를 챙겨서 오신 분, 먹을 걸 사 오신 분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이글루스 분들도 많이 만났다. 25일에 잡혀간 모 군, 26일에 잡혀간 모 군, 잠시 상황을 보러 오신듯한 얼굴은 처음 뵙는 레이시님, 아르메리아님, 가온누리님. 그리고 그 분의 지인분들.
그래, 여섯시 뉴스 시간까지라도 버티자. 낡이 밝으면서 분명히 또 강경진압에 들어가겠지만, 언론은 아마도 또 축소, 왜곡 보도를 하려 하겠지만 그래도 아침 뉴스에 현재상황으로 대치하는 건 꼭 보여주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MBC만은 틀어주겠지. 목표를 여섯시로 잡는다. 그리고 해가 뜨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4시 40분, 계속해서 강경진압중이라는 문자가 들어온다. 여고생이 살수에 눈을 맞고 실명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전경 차 위에서 조금이라도 물살을 약하게 하려고 깃발로 막다가 정통으로 살수를 맞은 그 남자분은 어떻게 되었을까. 눈 앞에서 그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지금 이 곳에서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5시. 어둠이 점점 엷어지면서 저 먼 산에서 작은 불빛들이 하나 둘씩 보인다. 등산객들이 촛불을 밝힌 것일까.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지만 소리는 크지 않다. 모두 너무나 지쳐 있었다. 하지만 저 불빛을 보니 왠지 마음이 따스해진다. 왠지 날이 밝으면 뭔가 조금 더 나아질 것 같다. 어딘가에서 도움의 손길이 올 지도 모른다. 모두가 이 상황을 알아줄지도 모른다고. 그런 덧없는 생각이 들었다.

5시 반. 저 멀리서 밀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점점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어떡하지.

5시 38분. 멀리서 오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잠시 빠졌다가 옆을 보니 다시 살수차가 물을 퍼붓고 있다. 아래 있는 분들은 대부분 힘없는 여자분들이다. 하지만 한 분도 물을 피하지 않고 꿋꿋하게 맞고 있다. 아까 최전방에서 대치하다가 홀어머니가 너무 걱정하셔서 흠뻑 젖은 채 귀가한 zip0080군의 말이 생각났다. 살수에 CS탄 성분을 섞은 것 같으니 조심하라고. 그렇게 전해주고 4시쯤 집에 들어간 그넘에게선 매캐한 냄새가 났었다.


5시 50분에서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MBC에서 제대로 찍은 영상이 뉴스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환호하고 있는 그 때에도 살수는 무자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이쪽으로 몰려온다. 동십자각 안쪽에 있는 사람들도 일단 바깥쪽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수차가 도망치는 시민들을 뒤쫓아 꽤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살수구는 무자비하게 돌아가며 사람들에게 물을 난사한다. 그 옆은 전경의 행렬. 정말 순식간에 밀렸다. 신촌에서 있었던 일이 다시 생각난다.

그리고 끝없는 전경의 행렬. 거의 동십자각까지 밀렸다.

그리고 차로 막혀 있던, 그 전까지 대치하던 부분도 열리고 수없이 많은 병력들이 쏟아져 나왔다. 뒤에 경찰들이 서서 열심히 시위대의 사진을 찍고 있다.


어쩌면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삼청동 안쪽에서 나타난 전경들은 무자비하게 소화기를 뿌리기 시작햇다. 하얀 연기가 보이자 패닉 상태에 빠진 시민들은 뒤로 뒤로 도망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서도 다치는 사람이 생길까봐 천천히를 외친다. 여섯시 이십분의 일이었다. 그 상황에서 맨 앞에 있던 시위대는 파고드는 전경 사이에 끼어 고립되고, 연행되었다.

안국사거리까지 밀린 시위대. 다시 경찰과 대치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인원은 많이 줄어 있었다. 끝까지 있어야 했겠지만 진통제 효과도 애저녁에 떨어진 몸으로서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남아있는 친구들과 작별의 인사를 하고 한번만 더 연행되면 구속인 모 님과 같이 아래로 내려왔다.
잠시 종각역 삼성생명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고 세수를 했다. 정신이 조금 돌아온다. 그러자 이대로 가면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와서 모 님을 떠밀다시피 보낸 뒤 다시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건물 옆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전경 병력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예감이 좋지 않다. 이 길로 치고 올리오면 저 위의 사람들은 끝이다. 아직 지인이 일고여덟명 남아 있다. 등에 차가운 물을 끼얹은 것 같은 느낌에 황급히 아랫쪽으로 다시 내려가 광화문쪽을 살펴보자 끝없이 긴 전경의 행렬이 이쪽으로 뛰어온다. 안국사거리로 진행하는 게 틀림없다. 어디로 피해야 하지? 뒤로 돌아 인사동 쪽을 보자 다행히 그 쪽은 막히지 않은 것 같다.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빨리 빼라고. 인사동 길로 가라고. 전경들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올라가고 있다고. 내가 내려올 때까지 지인들은 길 가운데서 전경들과 대치하거나 담벼락 길에 있었다. 몰리면 끝이다. 오늘 전경들이 휘두른 방패와 곤봉의 모습이 뇌리에 다시 떠오른다. 인사동 길을 도주로로 두고 모두 데리고 빠지라고 황급히 끊고 일단 광화문으로 가서 스타벅스에 아직 남아 있던 지인분들과 합류를 했다. 시청에 아직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한다. 시청으로 가야 하나. 다들 괜찮은 걸까. 하지만 누군가를 더 이상 챙기기엔 내가 너무 지쳐 있었다. 금방에라도 주저앉을 것 같다. 이 때는 너무 급박해서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못했다.
그렇게 돌아왔다. 돌아오자 방금 전 나와 내 지인들이 있었던 안국사거리의 사진들이 보인다. 시민이 도망가는데 뒤에서 곤봉을 휘두르는 그 사진. 곤봉에 뒷통수를 맞고 쓰러지는. MBC뉴스 동영상을 보고, SBS동영상을 보고, 몇 장인가의 사진을 보고, 안국 사거리에서 피를 흘리며 실려나가는 여학생을 보고, 보고, 또 본다.
그리고 조금 울었다.
블로그에 글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괜찮다고. 무사히 돌아왔다고. 농담으로 얘기하던 닭장차는 다행히 타지 않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새글쓰기를 누른 후 멍하니 하얀 화면을 보다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 눕는다. 나는 다시 나가야 한다. 우리는 다시 나가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는 이제 이렇게 되었다.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 by | 2008/06/01 19:35 | 촛불 | 트랙백(2) | 핑백(1) | 덧글(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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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올려주시는 글들 보면서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시위에 나서신 모든 분들께 바라는것처럼 쥔장님께서도 몸 조심하시고, 부디 다친곳 없이 무사히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곧 준비하고 나가겠습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소화기 분말 가루가 날리는 모습과, 살수에 맞아 버스 위에서 떨어지는 시민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충격적이었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혼자 가서 밤을 새기도 뭐하고 사실 은근 겁도 나서 새벽1시쯤 돌아왔는데...먼저 돌아가려니 뭔가 좀 죄송스런 마음이 들더군요..;;
새벽4시까지 조마조마하면서 뉴스를 보다 잠들었는데 아침에 진압 소식 듣고 정말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이게 2000년대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ㅠ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실명했다는 여고생이 너무 안타깝네요
꽃다운 나이에 실명이라니 T-T
전.....늦게 온 바람에 환자들 안다치게 바리케이트 치고, 휴지줍는것 밖에 못했지만요.ㅡㅜ
오늘도 함께하지 못함에 죄송한 마음뿐이네요
몸도 안좋으신것같은데 걱정입니다
제발 오늘밤 큰일이 없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다람쥐 신세지만...기운차리시구요.
걱정 많이 했었습니다. 글 보고 잠시 안심했어요. 화이팅입니다.
내심 그간 큰 충돌없이 나름 조용히 시작하고 끝났었기에 다행이다 생각했엇습니다만
오늘이후론 양측 모두 격하게 될까 겁납니다.
힘냅시다. 오늘만이 끝은 아니니까요.
http://medwon.egloos.com/1749058
읽기 귀찮으시다면..
1. 식사는 꼭 든든히 하고 갈 것.
2. 새벽에 참석하시려는 분들은, 초콜렛등 고열량 간식, 보온병, 의복, 담요등을 챙기실 것.
(살수차에 맞아 저체온이 발생한 환자에게는 염분이 첨가된 따뜻한 설탕물 복용)
3. 밴드, 파스, 점안액 그 외 간단한 구급 약품을 가져가면 좋음.
요정도가 가장 필요한 사항 같아 적어 보았습니다.
모두 모두 힘냅시다!!
버스 위에서 물 맞고 쓰러져 실신하신 분 정말 걱정됩니다. 몸은 괜찮으신지. 초콜렛 정말 챙겨가면 좋아요. 배고픈 줄 모르겠더라구요.
잘 몰라서 여기에 올려요. 일단 저는 성금내고 동참하긴 했거든요.
마음은 굴뚝같은데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것인지
모르겠어요.
괜히 낚인건지.. 아니면 잘 한 일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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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에서 합니다.고시철회 국민소송!! 저조한 참여율에 놀랐습니다.참여안하는 여러분한테 더 화가 납니다! 이래서 멍청한 대중이란 말을 듣나 봅니다.130만은 어디갔습니까?지금3만명 서명이 됐습니다.!!!3만명만 채우면 되는걸까요? 쪽팔려서 어디 소송하겠습니까? 아고라토론에 베스트로 올라오는 글 중에 4-5시간만에 조회수가1만명을 넘기는 글이 많더군요. 5천원이 아까운가요? 인터넷에서만 떠들지말고 실천을 하자고요 제발!!반드시 참여하시길 바랍니다.시간이 없습니다. 6-2일 4시마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네이버로 퍼트려주세요 http://minbyun.jinbo.net/minbyun/zbxe/popup/people_law.html
5시? 아무튼 다시 막 전경들이 밀고 들어올 즘, 제 친구는 물대포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뒤로 나가 떨어졌는데 저희 둘다 마른 여자다보니 앞으로 갈 엄두가 안나더라구요. 친구 언니는 얼굴 뿐만 아니라 머리도 정통으로 맞았고, 저는 말 그대로 90도로 내리꽂히는 물줄기에 주저앉는 줄 알았답니다. 마침 뒤로 움직여서 다행이었어요. 이젠 더 이상 모닥불 옆에서 쉴 여유가 없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마저 시렸답니다. 그래도 덜덜 떨며 누군가가 주신 다 젖은 담요를 둘이 둘러쓰고 비명과도 같은 구호를 외쳤습니다.
쿄님,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저는 학교에서 배우는 사회시간에 이 나라의 권력은 우리, 민중으로부터 나온다고 배웠답니다. 이게 사실일까요?
너무 가슴아파요. 어쩌나....
이명박 정부, 정말 어디까지 해볼셈인지.
여러분 모두, 앞으로도 힘냅시다. 힘냅시다. 이게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인 것일테니까요.
소심한 저이긴 합니다만..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조만간 저도 나가게 될것 같습니다. 힘내세요~!
다행이에요..
이 나라가 어디까지 가려는건지...요즘은 정말 뉴스를 보면 한숨이요 인터넷을 켜면 눈물입니다.
제가 일하는 시간이 거의 자정까지인지라 부산 집회에 한 번도 못 가 봤는데...이렇게 밤새 뛰신 분들 존경스럽습니다.
몸조리 잘 하시고, 힘 내세요!
이런 응원밖에 못하다니 ㅠㅠ
그리고 무서워요.
할 말이 없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다시 80년대 풍경을 2008년에 보게 되는거지요?
몸조심 하세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