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그러나 즐겁게 살 거다

1. 좀전에 광화문에서 돌아왔다.
오늘은 안 나갈 생각이었는데 낮에 경복궁에서 사람들 연행하는 꼬라지를 보니 도저히 안 나갈수가 없더라. 가뜩이나 몸이 안 좋으신 옆동 주민님과 마감중인 윗층주민님도 다 때려치고 가야겠다며 집을 나섰다. 열시쯤 도착했는데 이미 광화문은 소화기로 뿌옇다. 진짜 무자비하게 쏴대더라. 사람 얼굴에 대놓고 쏘는 거 정도는 기본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직장 퇴근 후 곧바로 합류한 분들이 무척 많은 듯. 예쁜 출근복에 명품 가방을 들고 있는 고운 아가씨도 많고, 양복 입은 직장인분들도 주말보다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하지만 그 옷들엔 이미 소화기 분말이 뿌옇게 끼어 있다. 여기서 계속 서서 구호를 외치다가 투썸플레이스 골목쪽으로 이동. 양복차림의 남자가 시민들이랑 실랑이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조선일보 기자더라. 창의력 대장들이면서 귀찮게 취재는 뭐하러 나왔냐. 걍 아래 기사처럼 소설을 쓰지? 그 쪽에 잠시 있다가 어찌어찌 혼자 새문안 교회쪽으로 이동. 윗쪽이 시끄러워서 보니 전경이 시위대한테 돌을 집어던져 맞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있고, 그에 흥분한 시위대가 어딘가에서 수도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었고, 전경은 앞쪽에 선 시민을 끝도 없이 방패로 후려갈기고 있었다. 방패는 하염없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퍽퍽 소리를 냈다. 그냥 미쳤구나. 이 인원이 있는데도 이 지랄이면 아까는 대체 어땠던 거냐. 나도 모르게 악을 쓰면서 때리지마를 외쳤다. 그러다 이웃분들이 투썸근처로 오신다는 연락을 받아 씩씩거리며 투썸으로 왔는데 바로 살수 시작하더라. 조금 맞았다. 6월 1일엔 춥더니 이젠 제법 시원하네. 그래 ㅅㅂ 소화기 뿌리지 말고 걍 살수나 해라. 이건 숨은 쉴 수 있구만.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냐? 전에 Z군이 얘기하던 CS탄 냄새 같은데. 물에 분명히 뭔가를 섞은 냄새다. 기침이 나고 코가 간질간질했다. 조낸 열받아서 저도 모르게 구호를 외치며 서 있었다. 하지만 물줄기는 점점 거세졌고 안전거리는 여전히 지키지 않고 직사로 무자비하게 살수. 잘 한다. 잘 하는 짓이다. 시간은 벌써 한시가 다 된 시각. 다들 할 일이 잔뜩이라 오늘은 일단 들어가고 내일 다시 나오자고 생각했지만 발이 도저히 떨어지질 않는다.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주춤주춤하다가 결국엔 뒤돌아 집에 들어왔다.
들어오니 그새 난리도 아니다. 이 미친것들 방패를 대체 어떻게 휘둘렀기에 여자분 손가락이 잘라지냐. 그리고 남자분 손가락은 물어뜯었다며? 졸지에 손가락이 잘린 사람이 둘. 연행자는 이미 백명이 넘고. 부상자는 내가 있을 때부터 끊임없이 나왔었다. 매번 그렇지만 조금 일찍 시위현장에서 일어나 돌아와 확인하면 도로 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다. 먼저 집에 돌아왔다는 게, 끝까지 같이 있고 쪽수를 채우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것들은 사람이 적으면 두부가르듯 쉽게 사람들을 가르고 덥석덥석 잡아간다. 그나마 우리에게 힘이 되는 건 사람 수다. 한명이라도 더 있어야 진압 전에 눈치라도 본다. 그리고 현장의 사람들도 사람 수에 힘을 얻는다. 광장에선 늘상 외롭다. 아무도 우리를 봐 주지 않는 것 같고,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 것만 같다. 하지만 조금씩 사람이 늘어날수록 힘을 얻는다.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나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포기할 순 없다. 그저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상황을 알아 주고, 촛불을 들고 나와 주기만을 희망한다. 


2. 벌써 4시인데 잠이 올까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야지. 우울하지만 어쨌든 자야 한다. 감기도 간신히 나았는데 다시 도지면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니까.
어쨌든 건강하게. 건강하기 위해,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위해 아스팔트 위로 나가 외치는 거니까 잊지 말고. 
나는 악착같이 즐겁게 살 거다. 들려오는 소식이라고는 개같은 것 뿐이지만 그래도 소소한 즐거움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진 않을 거다. 일단 자고.
그리고 다시 내일.


by kyoko | 2008/06/26 04:17 | 일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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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riss at 2008/06/26 04:20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도 들어와서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아서 아직까지 인터넷을 뒤적이고 있네요.
Commented by laystall at 2008/06/26 04:24
수고하셨습니다. 차마 방송을 끄질 못하겠어요. 푹 쉬셔요.
Commented by Murky at 2008/06/26 04:30
우왕 쿄롤님을 스쳐 지나갔겠군요 ㅎ 저는 좀전에 들어왔답니다.
고생많으셨어요.
Commented by 권모씨 at 2008/06/26 04:47
남자분 손가락 잘린건 찾으셨답니다- 그리고 여자분이갸기는 루머인듯합니다. 어쨌던 고생하셨습니다... 쉬세요...
Commented by 사이오닉스톰H at 2008/06/26 05:04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안 온다-_-
Commented by 세인 at 2008/06/26 05:23
그러나 즐겁게 살아야죠.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가는 거니까요.
Commented by 比良坂初音 at 2008/06/26 06:06
쓰읍-_- 손가락 절단소식에 시껍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은 좀 더워도 중무장하고 나가야 할것 같군요
진짜 이놈의 똘박이가 민란이 일어나길 바라나 봅니다
Commented by 제이 at 2008/06/26 07:54
고생많으셨습니다. 국민들-_-은 좀 자면서 살고싶어효. ㅠㅠ
Commented at 2008/06/26 09: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6/26 09: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욕심이 at 2008/06/26 10:29
우울해여. 그전보다 더 심해졌는데 사람들은 예전보단 덜 관심이 적어진거같아서 씁쓸해여. MB는 걍 말로만 떠들고 실제론 그대로. 제자리걸음....
다치신분들 다 쾌차하길 빌구여...
명품가방이랑 옷이랑 더러워지신분들... 나라에 청구하면 가방다시사주고 드라이값이라도 주려낭...
Commented at 2008/06/26 10: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반짝씨 at 2008/06/26 12:16
어쩐데요... 어쩐데요...ㅠㅜ 손가락...
Commented at 2008/06/26 12: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바람의속삭임 at 2008/06/26 13:33
즐겁게 강해져야 할 시점인 거 같아요!^^
Commented by 테디냥 at 2008/06/26 13:33
아무리 떠들어도 벽에 대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정말 가슴이 아프네요 ㅠ_ㅠ
고생하셨어요 정말...
Commented by 연화 at 2008/06/26 13:41
사람이 줄어들면 이럴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너무 무자비하군요. 날씨가 더워져서 그나마 물에 젖어 달달 떠는 일이 줄어들 거란 게 한 가닥 희망일라나요. 토요일에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들도, 지금 이대로라면 아마 다같이 촛불들러 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ㅠ
Commented by 아슈 at 2008/06/26 17:04
이러다가는 제 정신이 오래 못버틸 것 같습니다.
목청껏 외쳐봤자.. 아무도 듣지 않고
그 와중에 이리저리 선동당했다는 억울함만 늘어가고...

진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요.
Commented at 2008/06/26 19:5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조프로 at 2008/06/26 20:28
add link 신고합니다.
Commented by 플스양 at 2008/06/26 22:30
나날이 피곤해서 지쳐가고 있어요... 그래도 28일날 나갈 생각입니다만... 아 정말 이번 정부는... 참... 거시기한듯... 해요.
Commented by 물속인간 at 2008/06/27 00:38
너무 슬퍼서 뭐라고 할 이야기도 생각나지 않네요.....
Commented by 사오시안트 at 2008/06/27 00:40
정말이지, 그래도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게 와 닿네요.

그래야죠.
Commented by 아이리스 at 2008/06/27 11:25
아픈 몸을 이끌고라도 나가야겠습니다.
Commented at 2008/06/27 13:3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날닮은너 at 2008/06/27 16:01
물대포에 대항한 아이엄마의 기사를 읽고 반성했습니다....
저도 오늘은 광화문에 나가려합니다
Commented by skycat at 2008/06/27 16:46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고, 많은사람들이 다쳤는데도 아무것도 변하는것이 없어보여서 지치네요. 과연, 변하기는 할까 싶습니다. 촛불에 반대한다는 이른바 '보수'라는 사람들은 점점더 과격해지고, 안그래도 반쪽 나라가 그 속에서 또양분되는 느낌까지 받아요. 정답이라는건 원래 없다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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