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12월 31일. 곧 서른살.



지구 저편에서는 지진과 해일이 오고, 사막에 눈이 왔다.
지구 지축이 뒤틀려버린 리히터 진도 9.0.
한번에 36미터가 움직여 버린 국가존립이 위험하다는 휴양지로 유명한 어느 섬. 동남아의 따스한 햇빛 아래 가득한 시체 썩는 냄새, 전염병과 굶주림.
절망.



내 인생은 언제나 단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특별한 행운도, 돌연히 찾아오는 눈먼 사랑도 없지만 버림받거나 비참하게 극적으로 죽는 일도 없을 거라고. 핵전쟁이나 지진같은 것들은 나에겐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며 그냥 조용히, 이대로 조금씩 죽어갈 것이라고 그냥 막연히 생각하였다. 작고 허름한 방 안은 따스하고 책이 가득하며 옆에 있는 건 검정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인 그런 인생.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가는, 그리고 그게 아늑하기 짝이 없는.
혼자서 음악을 들으러 갈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스스로에게 반문한다. 그래도 혹시나 모자랄지 모를 무언가를 위해 바이올린을 시작한다. 내 자신으로 온전히 전부 채울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대로 얼려버릴 수는 있을 정도로 삶을 익혔어. 난 원하던 대로 조용히 조금씩 죽어가는 거고 그게 너무나 황홀해. 서른살 이후는 예정되어 있지 않은 시간이었다. 덤과도 같은 긴 시간. 그렇지만 아마도 앞으로도 단조롭겠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먼 나라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처럼.



그래도 가끔은 무언가를 쓴다. 깊은 곳의 연한 부분이 건드려지면 마치 배설처럼 쓰게 되는 글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들. 깊은 바닷물 속에 있는 나의 일기장처럼 결국엔 어둠 속에 침잠되어 버릴 이야기들. 그래도 나는 그것을 쓰겠다.

Endless end.

by kyoko | 2004/12/31 23:16 | 개삽질-_- | 덧글(9)

Commented by zuppy at 2005/01/01 16:06
당신은 서른의 죽음을 살았지만,
난 저만치 앞서 있다오..
서른 한 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나..

당신의 꺽은 환갑에 경의를..

Commented by 1mokiss at 2005/01/01 17:51
건강하시고, 새해 행복한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Commented by kyoko at 2005/01/02 04:01
zuppy님^^ 저만치라기엔 주변에 31실이 된 친구녀석들도 많아서.. 별로 멀리 안 계신 것 같습니다.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ommented by kyoko at 2005/01/02 04:01
1mokiss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__) 들러주시고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5/01/02 16:09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ommented by DEMON13 at 2005/01/03 15:31
지구 저편에서는 사람들이 종말을 봤다고 하더군요.뒤틀려 버
린 땅과 미쳐버린 바다의 칼날에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지
요.9.11일 때도 뉴스에서 쉴새 없이 나오는 비참한 영상을 보
며 생각 했습니다.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생명의 무게는 이렇게
도 무겁구나...이렇게도 덧 없구나 하는 것을 말이지요.그리고
동시에 너무나 현실감이 없게 들리더군요.약간의 감정의 동요
는 있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그
래서 평범한 일상과 늘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더 감사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어요.
Commented by kyoko at 2005/01/05 15:20
rumic71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ommented by kyoko at 2005/01/05 15:22
DEMON13 님, 사실은 그리 먼 나라 얘기도 아니고 조금만 둘러보면 주변의 누군가도 겪었을지 모를 일인데 이상하게도 일상과는 엄청난 괴리감이 드는 건 지금의 일상이 안온하기 때문일 것도 같아요. 이런 시간을 살아나가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Tristan at 2005/11/26 19:20
음 블로그가 반말체라 따라서 반말체를 써봤지만 도저히 체질상 모르는 사람한테 반말을 쓰는건... 썰이 안풀리는군요. 작년에 알았다면 05.01.01 00:01분에 문자 날렸을거에용... "앗싸 계란한판 축하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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