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2월 10일
협궤열차의 기억

네이버에서 찾아낸 협궤열차의 사진.
새벽에 4호선 안산구간을 탔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한대앞 역을 지나가다가, 낡은 철로를 보았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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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궤열차라는 게 있었다. 일제시대인 1937년에 만들어져 인천지역의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나르는 용도로 씌여진 열차였다. 수원-인천간을 달리는 열차라 수인선이라 불렸다. 이 외에도 수원-여주간을 잇는 수려선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건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2년에 이미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수인선 협궤열차는 낡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95년 12월 31일까지 계속해서 좁고 쇠락한 철로를 달렸다.
고등학교때였다. 지금이라면 등교거부아쯤 되었을까. 1학년때야 그럭저럭 학교를 잘 나갔지만, 2학년 초반 아파서 입원을 하게 되었다. 3개월을 내리 쉬고 병원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프라모델 조립을 하고, 몸이 좀 괜찮은 날엔 미술관에 갔다. 3개월 후에 학교를 가자 외국어고 특유의 끔찍한 입시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학교에는 관심이 없어진 상황이라 간섭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으로 시험 전에만 벼락치기해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내고 그 외의 시간에는 결석과 조퇴를 밥먹듯이 했다. 고 3때 생활기록부에는 조퇴만 60번이 씌여 있었다. 수업일수를 채워야 졸업이 가능하니 결석보다는 조퇴를 선호한 결과다.
그렇게 조퇴를 한 후 교복을 입고 이곳저곳에 갔다. 주로 간 곳은 과천 현대 미술관이었다. 1993~1994년, 과천 현대 미술관의 모든 전시회는 다 볼 수 있었다. 동물원에도 자주 갔다. 아침에 직접 싼 도시락으로 중간에 배를 채우곤 했다. 청계천에도, 회현상가에도, 중국대사관에도 갔다. 당시 디오라마 대리제작과 애니메이션 선화작업을 약간씩 했는데, 그걸로 돈이 생기면 애니메이션을 복사해 보거나 만화책들과 일러스트집을 모으거나 하는 데에 전부 돈을 썼다.
그러나, 나의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 건 수인선 협궤열차와 그림이었다.
고 2때 수인선을 처음 알게 되었다. 윤후명의 협궤열차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집이 있는 안양에서 수원은 그리 멀지 않아 수원역까지 가서 5백원 남짓한 표를 끊었다. 그 때는 이미 수인선은 인천까지 가지 않고 소래포구까지만 운행하는 실정이었다. 수원- 소래의 두꺼운 도화지 표를 손에 쥐고 협궤열차에 올랐다. 하루 세번밖에 다니지 않는 차였다. 아침 일곱시와 점심 1시 반, 저녁 6시 반이었던가.
마구 흔들리며 달리는 한낮의 기차에는 두어명의 승객이 전부이고 전철처럼 마주보는 좌석은 너무 좁아서 조금 과장하자면 맞은편에 있는 사람과 무릎이 맞닿을 정도였다. 트럭과 부딪히면 기차가 전복된다는 열차였다. 그 전에는 황소랑 부딪히면 넘어진다는 소리도 있었다. 중간 중간 선로를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마치 자동차처럼 잠시 멈춰서서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주기도 했다. 속도도 시속 60km를 넘기지 못해고 기껏해야 40~50km사이의 속력으로 달리는 게 고작이라 수원~소래간 40km정도의 구간을 달리는 데 1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차 안에서는 아주 오래된 냄새와, 어촌 특유의 해산물 냄새가 비릿하게 섞여서 풍기고 선로 주변은 황량했고 낮은 야산과, 작은 논밭과, 이미 사용하지 않는 검게 썩은 소금창고들이 있었다.
그런 길을 지나, 소래철교를 건너면 작고 하얗고 낡은 목조건물인 소래역에 도착했다.
그러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낡고 오래된 철교와, 쇠락한 어촌과, 검은 포구의 물과, 아무도 없는 작은 교회.
그런 것들.
그리고 철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아래로 바닷물이 보이는 철교를 건너,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철로를 따라 걷는다. 걸으면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토스카, 카르멘의 아리아들, 그때 내가 듣던 노래들, 그리고 모짜르트. 중간 중간 논에 불을 놓는 할머니가 보이면 같이 논에 불을 놓아 드린다. 가끔은 앉아서 소금창고를 스케치한다. 캔버스엔 온통 회색과 검정색 뿐이다.
안산까지 걸으면 7시가 조금 넘는 시간. 그때에 오늘의 막차가 들어온다. 철로 옆으로 비켜서 지나가는 협궤열차를 바라본다. 4호선 안산선을 타고 집에 돌아간다. 안산선이 생기기 전에는 중간중간에 있는 허물어져가는 나무푯말만이 역임을 알려주는 곳에 서서 그날의 마지막 차를 기다리곤 했다.
1993년과 94년, 내가 가장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었던 곳은 협궤열차의 선로 위였다.
그리고, 부모님의 뜻에 따라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진학하고 나선, 이런 일상은 종료되었고 1995년의 마지막 날, 협궤열차는 경제성을 이유로 더 이상 다니지 않게 되었다.
오늘 새벽의 4호선 창 밖 풍경에는 군데군데 끊어진 협궤열차의 선로가 보였다.
마음이 조금은 조여 왔다. 그러나 단지 그것 뿐이다. 협궤열차는 이미 없어졌고, 그 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1993년의 황량했던 평야와 나무 한 그루는 보이지 않고, 아파트 단지와, 상가 건물과 LG정유와, 잘 닦인 도로만이 눈에 보일 뿐.
그런 것이다. 진부한 얘기. 추억은 아름답고, 현실은 잔혹하고, 시간은 흘러가고. 그러면서도 온전히 내 자신으로 있었을 때가 그리워지는.
그래도 결국엔 그 모든 것을 잃어도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는 거다.
아무리 소중했어도.
그냥 그런 이야기.
# by | 2005/02/10 03:27 | 개삽질-_- | 트랙백 | 핑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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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제가 쿄코님 이글루에 열성댓글 달기 시작한 게 바로 그 포스팅 때문이었는데...힛히히(...) 이런 이야기 하시면 그게 뭔 포스팅인지 다들 궁금하시겠죠? 협궤열차의 기억 ... more
고잔역이었던가.. 중앙역이었던가...
아래를 걷는데 오래된 철로가 보여서 궁금했었죠...
바로 협궤열차였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참.. 아프시다 하셔서 너무 걱정스럽네요. 별로 밝은 글이 아니라 괜히 읽으시고 우울해지신 게 아닌지;
2천년도에 4호선이 오이도까지 연장되면서 선로가 토막토막 끊어져 지금의 형태로 남게 되었답니다.
방문해주시고 글까지 읽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어서 나으셔서 저랑 오뎅바 가요 ㅎㅎ
철도박물관에 있는 협궤열차는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없게 되어있더군요. 안타깝습니다.
물론 경제성도 중요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협궤열차 한대쯤 계속 운행해도 나름대로 줗은 점이 있을 것 같은데..^^;
참, 이오공감에서 들어왔다가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습니다^^;;
90년경이면 협궤열차가 아직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네요. 가능하면 계속 달려주었으면 했는데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답니다.
어렸을 때 저런 걸 한번 타 보는 것도 상당히 인상적인 경험일 텐데요.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