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촛불문화제

정부에게, 전경에게, 우리들에게

정부에게.

어제 5시에 집을 나섰는데 돌아온 시간은 오늘 낮 한시. 돌아와서도 잠을 자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정부 니들 긴급담화를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잠이 안 오더라. 쳐 자지도 못한 주제에 다시 기어나갈까 심각하게 고민까지 했다. 이 개병신들아 여기서 더 고강도 대응을 하겠다고? 니미 씨발 지랄을 해라 아주 썅 욕을 안 하려고 해도 이 채를 썰어 까나리 액젓에 버무릴 놈들이 꼭 사람 입에 걸레를 물게 만드냐. 십년묵은 정화조처럼 냄새나는 권력에 찰싹 붙어서 그 똥맛 좀 보겠다고 눈이 벌개 시민들한테 덤빈 지 하루도 안돼 그게 모자라니 더 밟겠다고? 어제 전대협 깃발 나왔더라. 너희는 이제 2008년형 오월대, 녹두대까지 나오고 모든 시민이 파이랑 꽃병 들고 튀어나오게 만들고 싶은 거냐? 이젠 십라 소고기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백주대낮에 그렇게 쥐어패고 평화시위하자고 누워 있는 사람들 짓밟고 방패로 찍고 지나가고, 아기한테까지 소화기 뿌리고, 혼자서 촛불들고 서있던 여자분 넘어뜨리고 밟고 팔이 부러질때까지 차고.
진짜 어제 죽은 사람이 없었던 게 하늘의 도움인 줄 알아라 정말 사람이 죽어나가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짱돌과 금속너트와 소화기 빈 통. 아니 재주도 좋아 개새끼들 대체 광화문 어디에서 돌을 구하는 거야?? 지들은 차벽으로 막아놓고 차 위에서 던지고 던지고 또 던지고. 그거 맞고 두개골 함몰되어 병원 실려간 사람부터 머리 찢어지고 깨진 사람까지 다친 사람이 진짜 끝도 없이 나오더라. 버스 아래로는 스패너 던져서 시위대 발목 맞추고, 최루랑 색소 섞은 살수 뿌리고. 시바 어제 커피빈쪽 살수를 보니 지금까지 살수는 애들 장난이더라? 금속노조 분들을 필두로 건장한 성인 남자들도 나자빠져서 계속 뒤로 실려가는 거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직사로 쏘는 건 이제 메뉴얼에 올렸나보지?? 인도에 있든 차도에 있든 무조건 무차별 연행. 시발 너희가 지금까지 안 한게 발포랑 최루탄 빼고 뭐가 있냐. 근데 여기서 더 강경대응? 오늘 전경들 방독면 쓰고 나왔다면서?? 이젠 최루탄인가보구나 그래 잘들 한다. 아예 발포까지 하지?
세상 아무리 지랄같다 해도 대체로 뿌린대로 거두는 법이고 아무리 그래도 절대 해서는 안 될 게 있는 거다. 너희가 때리면 때릴수록 불만은 더더욱 커지고 더 단단해진다. 내가 오늘 홀로 나와 얻어맞으면 다음엔 우리 가족과 내 친구들이 몽땅 나오게 되는 거란 말이다. 내가 오늘 맞지 않았어도, 내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이 얻어맞는 걸 보면 그게 내가, 내 친구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기에 울분을 품고 다시 나오게 된다는 거다. 이러면 이럴수록 사람들은 더 나오게 된다. 뿌리깊은 반발감을 갖게 된다. 어쩜 비교적 간단할 수도 있었던 문제를 이토록 어렵게 만드냐. 재협상에 준하는 추가협상을 했으니 지금도 불만을 얘기하는 사람은 불순세력에 빨갱이라고? 시바 니들의 추가협상이 잘했고 못했고는 제쳐두고, 니들 뭔가 착각하나 본데 쇠고기는 그저 도화선이었다. 지금은 너희의 태도가 문제다. 국민을 천민으로 보고, 몇 개 미디어 장악하고 사진, 동영상 편집하고 빨갱이, 폭도로 몰고, 기어나오는 사람들은 일단 무조건 잡아가고 때리고 짓밟는 그게 문제가 되어버렸단 말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이 바로 옆에서 짓밟히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걸 묵과한단 말이냐. 이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복수할 거다. 이렇게 끝나진 않는다.


전경에게.

전경 이 병신새끼들아. 나 여자지만 마인드는 나름 개마초삘이라 남자애들 군대 가서 개구르고 고생하는 거 진짜 안타까워하고 니들이 시킨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쪼다들아 그럴수록 사람은 못 되어도 짐승은 되지 말아야지. 어제 너희 뛰어나올 때 꼬라지는 내가 시바 잊혀지지가 않는다. '요이~ 땅! 스타트! 누가누가 많이 때려잡나효 저것들은 사람이 아니라 게임에 나오는 몬스터입니다 우리 용감한 전경들 열심히 킬수 올려보아요.' 딱 이거더라? 전열이고 나발이고 개뿔 없고, 흥분해서 우르르 뛰쳐나와 인도든 차도든 일단 방패랑 곤봉부터 휘두르고, 바닥에 넘어져 있는 사람은 곤봉으로 때리고 밟고 차고. 너희 걱정되어 살피러 나온 전경 어머니도 밟고 때리고, 길이 미끄러워 넘어진 여자도 밟고 차고, 평화시위 하겠다고 누워서 비폭력 외치던 사람들도 밟고 방패로 찍고. 야 이 병신들아 니들이 때리는 건 게임 캐릭터가 아니고 사람이야. 지금 너희 크게 착각하는거야 평생 군대에서 말뚝박을래? 국방부 시계든 경찰청 시계든 어쨌든 시간은 가는 거 너희도 알잖아. 너희가 어제 때리고 밟고 방패로 찍은 사람은 제대 후 같이 어우러져 살아야 할 일반 시민들이란 말이다. 내가 명령 불복종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그 개같은 시스템에서 그럴 수 없는 거 아니까. 그래도 적어도 하지 말란 건 하지 말아야 될 거 아냐 어제처럼 니들 어머니를 때리게 될 수도 있단 말이다. 니들은 에미애비도 없냐? 진짜 니들 곤봉 휘두르는 거 어제 보면서 십라 이것들은 무슨 경찰청에서 세포분열로 만들어낸 신무기 새끼들인가 내 눈을 의심했다. 너네 전경생활 2년 한 뒤 혀깨물고 뒈질 거니? 사람사는 세상에 안 기어나올 거야??
너희도 피곤하겠지, 계속 동원되서 힘들겠지. 시위현장 나서보니 신경 예민하고 흥분도 되고 좀 오버할 수도 있지. 내 진짜 별 생각을 다 해봤어. 근데 내가 아무리 이해를 하고 동정을 하려고 해도 어제는 정말 답이 없더라. 이 쪼다들아 너희를 부추키고 강경진압하라고 시키는 것들은 자식새끼 절대로 군대 안 보내. 너희를 쓰다 버린 콘돔 정도로밖에 안 보는 거 너희도 알 거 아냐. 몸 힘든 것보다 개인을 모멸하는 그런 군대 특유의 태도가 제일 자존심상하고 열받고 적응 안 된다고 내 친구넘들은 다 이구동성으로 말하더만 니들은 자존심도 없냐??  니들이 앞으로 오랜 세월 동안 같이 살아갈 사람들은 그 곳엔 없단 말이다 이 뇌가 청순하다못해 아예 뇌없는 것들아. 니들 날뛰는 걸 보면 미친개가 오히려 절도있어 보이더라 썅것들아.


우리들에게.

살다살다보니 별꼴을 다 봅니다.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어째 5개월만에 세상이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요. 하지만 사실 이 상황은 꽤 오랫동안 쌓인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전 이번 일들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요. 겨우 서른 셋, 시위에 전혀 참가하지 않고 운동에도 전혀 관심없던 95학번인 저는 광주가 옳은 거였고, 6.10이 왜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고, 김대중이 드디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왠지 기뻐하던 아파트 주민들을 기억하고, 박정희 전두환이 얼마나 나쁜 놈들인지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학내 한총련에 대한 왠지 모를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노조 파업을 한다고 하면 왠지 찜찜한 마음이 들었고, 96년까지 이어진 몇 번의 시위를 보면서 그냥 막연하게 나랑은 참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건 왜였을까요. 아마도 아주 어릴 때부터 정부에 반대하는 건 빨갱이라는 교육을 받고, 어려운 한국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희생하는 개인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햐 한다는 압력을 받고, 신문과 방송에서는 정당한 노동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을 집단 폭도로 매도하고, 격렬한 시위 현장과 노동자가 경찰에게 덤비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서 뿌리깊은 폭력에 대한 혐오와 공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미지를 심어 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 외에도 많겠지요. 결국 그나마 대학까지 마치고, 나름 열린 시각을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했던 저마저도 그런 식의 이미지는 마치 각인과 같이 뿌리깊게 남아 있어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아니, 벗어날 생각도 없었지요. 무엇이 문제인지 굳이 인식할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정부가 들어선 지 5개월, 시위에 참가한 지 한달이 되자 제가 가지고 있던 그 이미지는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조중동, 정부 언론장악. 부당한 공권력. 말로는 알고 있었지만 바로 전날 제 눈 앞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어떻게 씌여질 수 있는지, 편집에 따라 어떻게 보여질 수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런 식의 방송과 신문 기사가 올라오면 그에 의해 주가가 춤을 추고 여론은 달라집니다. 그에 불만을 가지고 항의하고 불매운동을 하면 협박과 고소를 당합니다. 그들은 최소한의 품위도, 양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했었는지, 어떤 식으로 본인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마땅히 진행되어야 했던 그 모든 일에 빨갱이, 폭력배, 폭도로 매도를 했는지 이젠 확실히 알겠습니다. 분명 한총련에 문제가 있을지 모릅니다. 노동운동에 문제가 있을지 모릅니다. 귀족노조로 회자되는 장사꾼 노조도 문제가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몇 가지의 문제를 과대포장해 대중 앞에 내놓아 정당한 목소리를 묻어버리고, 별 생각 없이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막연히 다 깡패새끼들이고 그 중에 빨갱이가 있대. 라는 인식을 심어 간신히 목소리를 낸 사회적 약자들를 대중에서 고립시키고 효과적으로 짓밟았던 거 이제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병신같지만 당해보니 확실히 알겠어요. 부끄럽습니다.
지금도 저들은 그동안 하던 대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젠 그 차례가 우리가 된 거지요. 인터넷을 하고, 블로그를 하고, 포탈의 기사를 훑어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우리들이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권력과 악법에 당하고 치여 신음합니다. 너무나 압도적이고 부당한 폭력을 겪고 그에 최소한의 방어를 하려 해도 그건 어느새 폭도의 사진이 되어 다음날 신문에 실려 있습니다. 그들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냥 아예 나오지 않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위현장에 자전거를 타고 와도 조직적 척후대라는 말을 듣는 세상입니다. 가만히 앉아 촛불을 들다가 앞의 사람들이 다치는 걸 보며 울분에 차 악을 쓰며 구호를 외치는 아가씨들에게 돌아오는 건 요샌 기집애들이 더 설친다는 소리입니다.
너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렇게 맞을 일이 없다고 하지요. 나오지 말라는데도 계속해서 나오고, 정부에 대해 이건 아니라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당연히 맞는 거라구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아까 말했지만 지금은 우리 차례죠. 하지만 이 다음엔 당신 차례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비정규직이 되고, 정당한 월급을 받지 못해 울분을 토하고 도와 달라고 하면 당신은 국가경제를 좀먹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 폭도가 될 수 있다구요. 그냥 아직 당신 차례가 안 온 거란 말입니다. 이번에 우리 차례가 오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것처럼요.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부조리한 일들도 많은 세상에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와 안전만이라도 침해하지 말아 달라고 울부짖는 겁니다. 그런데 다치기 싫으면 입을 다물라구요. 나서는 너희가 문제 있다구요? 그 뿌리깊은 굴종의 피는 대체 어디서 수혈받은 건가요. 박정희? 전두환? 조중동?
지금 이 상황은 그냥 5개월동안에 벌어진 일 때문이 아닙니다. 그 전부터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던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촛불을 들어야 합니다. 잘못된 언론에 대한 보이콧을 지속하고, 가만히 있는 게 자유와 권리를 침해해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겁니다. 당장에 그 모든 게 바뀔 순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만이라도 달라져야 합니다. 잊지 마세요. 결국에 선택하는 건 저들이 아닌 우리입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그리고 다치지 맙시다. 모든 건 즐겁게 잘 살기 위한 노력입니다. 잊지 마세요.
      

by kyoko | 2008/06/29 23:58 | 촛불 | 트랙백(5) | 덧글(50)

내가 촛불집회에 나가는 이유?

왜 그렇게 집회에 열성적으로 참석하냐고 묻는 몇 분을 위해서. 편의상 반말로 씁니다.-_-

내가 원래 좀 치사하고 드럽고 쪼잔한 인간인데다 협객도 아닌 주제에 원한은 절대 잊지 않는데, 그런 성격 탓에 한번 삐뚤어지면 골치가 아파서 언제나 말하지만 나와 내 주변인에게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지 않는 한 어떤 일이든 섣불리 끼어들지 말자는 원칙을 가지고 살고 있어. 그래서 광우병 관련해서도 사실 촛불집회까지 나가고 그럴 생각은 없었고, 전에도 잠깐 얘기했지만 FTA자체에는 어느 정도 찬성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검역주권을 가지고 제대로 된 장치 하에 쇠고기를 수입한다면 그 맛있고 값싸다는 쇠고기 얼마든지 먹어주겠다는 마음 또한 갖고 있었지. 
하지만 십라 미쿡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엠비색히의 외교방법은 개념을 즈이 에미 뱃속에 놓고 나온 건지 아니면 어릴 적 살던 오사카 변두리에 떨궈놓고 온 건지 분간이 안 갈 행태였기에(다음에 오사카 여행을 가게 되면 뒷골목 어딘가에 떨궈져 있을지도 모르는 개념님을 한번 잘 찾아보련다. 근데 그 일족 하는 짓을 보면 아예 개념무장착증후군 같은 불치병에 걸린 채 태어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_-) 귀차니즘을 떨치고 분연히 일어나 현수막 정도는 걸겠다(..)는 입장을 피력하게 되었던 거야.
나는 분명히 쇠고기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 중에서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퍼센트 안전하다고도 믿지 않아. 이건 세상의 다른 식품들도 마찬가지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하지만 평생 쇠고기 한 번 먹을 것도 아니고(난 정말 자주 먹을 거야. 맛있다며? 난 맛있는 거 좋아하거든.-_;;) 일단 수입하게 되면 여러 방면에서 접하게 될 음식인데 그게 0.00000000001그람이라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걸 굳이 그렇게 수입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면 그걸 꼭 이런 식으로 시스템이 전혀 안 갖춰진 상황에서 냅다 가져와야 되겠니. 그래놓고 한다는 소리가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야. 일단 들어오면 100% 자율적인 선택 하에 골라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일단 그런 시스템이 안 되어 있잖아. 수입하라고. 누가 뭐래? 대신 그 전에 확실한 시스템 만들라고. 검역 제대로 하고, 전수조사 하고, 한우농가 문제 해결하고, 유통과정 투명화하고 나서 하란 말이야. 얼마 전에도 뼈는 호주산+ 살은 미국산 본드갈비 얘기 기사 떴더만 안 먹고 싶은 사람도 그런 식으로 속아서 먹을 수도 있고, 대규모 급식으로 나오면 그건 진짜 꼼짝없이 먹어야만 하는 거잖아. 젭알 선택이나 가능하게 하고 그런 소리를 하라고. 새우깡에서 쥐 나왔을 때 왜 생산 전량 리콜했는데? 그 새우깡에 전부 쥐 있는 거 당연 아니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잖아. 이왕 돈 주고 사 먹는 건데 조금이라도 찝찝하면 먹고 싶냐고 안 먹고 싶지. 이런 상식 중에 상식은 1그람도 고려 안 한채 그냥 가볍게 검역주권이고 뭐고 아무런 생각 없이 미쿡한테 툭 내던지고 온 꼬라지는 대체 뭘로 설명해야 하는 거냐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지 않나. 실질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토록 생각이 없는 넘이니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엔 대체 무슨 사고를 칠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오싹하다고. 5년간 계속 대통령 해먹을거면 젭라 국민 눈치 보는 거 1그람이라도 배웠으면 좋겠다고. 머슴 주제에 ㅅㅂ 지금 이 시추에이숑은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냐고. 나의 마음은 대충 이런 마음이었던 거지 뭐.
하지만 맨 위에서 설명한 나의 원칙-_-; 이 있으니 역시 기어나가지는 않고 그냥 온라인에서 진행하는 이런저런 서명이나 하고 현수막이나 주문하면서 찌질찌질 쪼잔하게 굴고 그랬는데 그넘의 5월 25일 새벽이 왔어. 그때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랑 맛있게 술 퍼마시고 그러고 있었지. 생각해 보면 나의 아름다운 음주 라이프는 그 이후에 한동안 없었던 것 같아.-_- 술 쳐마시고 알딸딸한데 연락이 오는 거야. 촛불문화제 나갔던 사람들 앞에 살수차가 왔다고. 전경도 가득이라고. 무력진압 할 것 같다고. 어우 야 님하 매너염. 십라 지금이 팔십년대니?? 술이 확 깨더라? 그래서 집으로 뛰어와서 생중계 하는 거 켰지. 어라 이게 지금 뭥미?? 경찰들이 떼거지로 와서 걍 촛불 든 게 다인 사람을 치고 잡아가네...? 엄훠 나 초큼 열받잖아.*^^* 이쯤 되면 안 나갈 수가 없잖아 ㅎㅎㅎㅎㅎㅎㅎㅎ 왜냐고? 지금 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나의 지인, 나의 친구일 수 있거든. 그리고 나일 수도 있어. 이쯤 되면 나한테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피해를 끼친 거 맞아. 볼테르 아저씨가 한 말 몰라? 나는 당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 사상으로 인해 탄압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이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런 무개념 즈질 블로그에서 운운하기엔 촘 많이 부크럽지만 암튼 그런 마음이었다구. 난 즈질 잡담이나 하는 무개념 된장 블로거지만 그런 얘기들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이런 세상이 되기 위해 지난 세월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피를 흘렸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구. 이건 정말 아니잖냐구. 이젠 닥치고 튀어나갈 때라구. 
그래서 26일날 기어나갔더니 다들 신촌으로 이동한대. 따라갔지. 노구를 이끌고 가려니 힘들더라고. 택시까지 타고 따라갔어.-_-;(나 언젠가 서울 나간 택시비, 이동비, 밥값, 병원비 등을 전부 엠비리씨한테 청구하고픈 작은 희망 하나 가지고 있어. 아놔 진짜 왜 쌩돈 날리면서 내 아까운 시간에 엉엉ㅠㅠ) 그래서 신촌 로타리에서 당한 일은.. 이제 유명해졌으니 생략할께. 다만 출발할 때 네 명이었던 우리 일행은 떠날 때 셋이 되어 있었어. 우린 인도에 있었는데도. 잡혀간 그 분이 무슨 과격행위라도 했냐고? 당빠 아니지.-_- 우리 일행은 나중에 합류해서 너희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촛불조차 없었는걸;;;
뭐 그 이후의 일들은 다들 알잖아. 우리는 계속 그런 불합리한 일을 겪게 되었지. 물대포에 맞고, 전경 방패에 찍혀 피보고, 군화발에 채이고, 소화기 분말 뒤집어쓰고, 쪽수 좀 줄어든다 싶으면 가차없이 토끼몰이. 젭라 소통 좀 해보자는 국민들에게 돌아온 건 명박산성. 그 사이에 언론은 뭐 했어? 후장 핥고 눈치보면서 집회 나가는 사람들, 엠비 반대하는 사람들은 싸그리 극좌 빨갱이 주사파로 만들지 못해 안달. 나 한겨레도 프레시안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기사 올려주는 거 보면서 진짜 눈물나더라. 감동했냐고? 아니. 억울해서. 그 오랜 기간동안 우리는 왜 서민을 대변하는 힘있는 일간지 하나 제대로 못 키워놨냐고. 왜 아직도 조중동이 70% 이상이냐고. 십라 조낸 쪽팔린다고. 암튼 그나마 마봉춘이랑 케베쑤가 열심히 다뤄주는가 싶더니 요새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역시 다들 알지? 이게 얼마만의 언론탄압이니 ㅎㅎㅎㅎㅎㅎㅎ 어우 야 29만원 대머리새끼가 생각나서 이젠 막 반가울라 그래. 난 엠비의 가장 큰 적은 곧 다가오는 초딩방학이요 기껏해봤자 초중고랑 싸우는 정도의 위인일 거라 생각했거든. 십라 근데 내 생각보다 그릇이 큰 넘이었어. 무시해서 미안.-_-;
잠깐 다른 얘기로 샐게. 혹시 KBS에서 전에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푸른눈의 목격자' 알아? 5. 18 얘기야. 그들은 광주사태라고 부르지만 지금 우리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거. 혹시 안 본 사람 있음 꼭 봐. 다시보기로 볼 수 있어. 솔까말 나 광주 얘기 심장떨려서 잘 못 봐. 관련 서적도 되도록 피했어. 하지만 그 다큐만큼은 정말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침착하게 볼 수 있었어. 왜냐면 지금 우리들 얘기랑 놀랄 정도로 비슷하거든. 물론 지금 이 상황을 어디 광주에 대냐고 분노하는 사람 있을 수 있어. 당연한 말이야. 도시 하나를 고립시킨 뒤 벌어졌던 압도적인 폭력과 희생당한 사람들. 오랜 동안의 독재에 대한 투쟁. 당연히 지금 상황에 비교할 수 없는 일이야. 그렇게 해서 조금 숨통트이는 세상이 된 거지. 그런데 21세기인 지금 십라 비아냥과 조롱이 어울리는 캐병진같은 색히하고 광주까지 떠올리면서 진지하게 싸우려니 아주 죽겠다 야. 근데 내가 매우 비슷하다고 한 건 '태도' 야. 그 때도 윗사람들은 어떻게든 떡고물 하나 더 떨어지는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그러기 위해서라면 다소의 무력과(물론 광주는 다소의 무력으로 끝나진 않았지.) 수많은 거짓말과 언론 통제를 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어. 그리고 일단 성공했지. 물론 그 때는 모든 언론이 다 그모냥이었지만 특히나 악질적인 건 역시 조선일보. 그때나 지금이나 조선일보는 어쩔 수가 없나봐. 1980년 5월 28일자 사설을 보니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인)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응, 덕분에 우리는 잊지 않았어. 어떤 식으로 언론이 통제되고 왜곡될 수 있는지, 너희들이 어떤 걸 원하는지. 지금 이 상황을 왜 이렇게 몰아가고 있는 건지. 그러니까 레드컴플렉스가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시대착오적인 빨갱이, 주사파 운운하는 거겠지? 근데 그것마저 어째 토씨 하나 안 틀리니 발전없는 것들. 누군가를 굴복시키고, 없애려고 할 때 너희가 선택하는 건 늘 같아. 거짓말과 언론통제, 무력탄압. 아마 지금도 그러고 싶을 거야. 실제로도 눈치를 보며 계속해서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고. 다만 그때와 지금 다른 게 있지. 바로 인터넷. 인터넷만 없으면 아마 벌써 더한 짓을 하고도 남았을 거라 난 생각해. 하느님 부처님 빌 게이츠님 감사합니다 흑흑.
아 진짜 말 길었네. 뭐 이쯤 얘기하면 내가 왜 비오고 바람부는 날에도 감기걸린 노구;;를 끌고 촛불을 들고 서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까? 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부조리한 일들에 대해 반대해. 그래서 결국에 어게인 1980이 되지 않을까 경계해. 그 때도 처음엔 이건 아닌데 싶어 기어나온 어리버리한 시민들과, 진압하래서 나온 어리버리한 군인들로 시작되었거든. 결국엔 그게 피바다가 되고, 그러려니 언론통제도 해야 되고 뭐 그런 순서를 밟았고. 그 망령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에이 설마 그렇게 되겠냐고? 나도 세 달 전까진 나라가 이지경으로 쑥대밭이 될 줄은 몰랐어.^^; 근데 있잖아 폭력으로 민의를 진압하고, 소통 자체를 거부하고, 언론까지 틀어막으려고 하는 넘인데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을 보게 될 것 같지 않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라는 게 인지상정이고 불 난 다음 외양간 고쳐 봤자 소용 없는 거잖아? 그래서 그러기 전에 강력하게 내 의견을 표출하고 싶어 택한 게 바로 촛불이야. 촛불보다 더 나은 게 있다면 그걸 하고 싶지만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으니까 이거라도 들어야지. 내가 너무 과민한 것 같다고? 오지랖이라고? 이보세요. 과민한 반응이고 오지랖이기를 가장 바라는 건 댁이 아닌 바로 나입니다요.^^ 이 모든 일이 그냥 해프닝이고 내일 대국민담화에서 허허허허허 오해입니다. 대운하 절대 안해요, 재협상 진행중이구요, 공기업 민영화? 이윤의 목적이 아닌 국민의 편익을 위해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투자 진행하는 게 공기업인데 왜 대책도 없이 민영화를 하나효? 화물연대 파업? 얘기 잘 풀었습니다. 이젠 서울 부산간 왕복하고 돈 한푼도 안 남는 일은 없을 거예욤. 전부 오해예욤~ by명박요정. 뭐 이렇게 끝난 뒤 앞으로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 열심히 살면 웬만하면 먹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우리 모두 무사하게, 안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구. 그런데 저넘의 색휘가 그럴 리 없잖냐구ㅠㅠ 아놔 또 기어나가야지 별 수 있냐고 엉엉엉.

뭐 암튼 이래서 나는 나간다고. 앞으로도 나가야 되면 나갈 거라고. 그래도 난 내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싶진 않다고. 그래서 그까이꺼 그리 위험한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도 아닌데 인터넷 여론에 부화뇌동해서 괜히 오지랖떨며 나가는 네뇬 꼴이 보기 싫다고 하는 당신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진 않으려고 해. 다만 배후; 이딴 얘기는 님하 젭알 자제점... 인터넷 세상도 사람사는 세상인데 기본 매너는 있어야지. 안 그렇삼? 진짜 느무 깝깝해서 긴 글 썼다. 헥헥.

아 길다.... 짤방이나 올릴게.-_-;



나도 아무생각 없이 이쁜 언니 보고 신상 구두 지르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야.-_;; 젭알 점 도와주셈 흑흑.


by kyoko | 2008/06/18 23:53 | 촛불 | 트랙백(1) | 덧글(105)

그럼 내가 배후에다 프락치냐

방금 집회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오늘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매우 우울하고 슬프고 쪽팔린다. 걍 블로그에 아무 얘기도 안 할까 하다가 들어오니 뭔가 엄청 어처구니없는 설이 여기저기 퍼져있길래 해명은 해야겠어서 자폭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오늘 9시쯤 해서 광화문에 갔다. 여전히 동네 주민님들과 같이 가서 일단 명박산성을 보았는데... 진짜 화나더라. 아무리 우리가 이렇게 떠들어 대도 저 놈은 눈 감고 귀막고 있다가 청와대 앞뜰에서 새소리 듣고 맛있는 거 먹고 그러고 있겠지. 확실히 오늘 사람은 정말 엄청나게 모였다. 하지만 그 인원들은 모두 경찰이 봉쇄한 라인 안에 있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명박산성은 너무 높고,  행진의 물결을 따라간 안국동도 역시 컨테이너로 가려져 있었다. 우리는 그냥 촛불을 들고 우왕좌왕 할 뿐이었다. 5월 말~6월 1일까지 보여주던 시민들의 재기발랄한 움직임. 아무리 작은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서 어느 순간 똘똘 뭉치는 그런 모습은 대책위의 확성기 소리에 묻혀졌다. 우리는 그냥 명박산성으로 막힌 즉석 광장에서 무력할 뿐이었고, 아무리 공연 등을 한다고 해도 이건 그냥 관광버스 같은, 그들만의 축제에 불과할 뿐이었다. 주변은 돗자리를 깔고 술을 마시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나 노는 거 좋아한다. 술도 무지 좋아하는 거 여기 오시는 사람들 다 아실 거다. 하지만 촛불시위에 왜 나오는 건가. 우리 놀러 나오는 거 아니다. 물론 많은 인원이 모인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압박감을 느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와서 경찰과 이명박이 마련해준 장소 안에서 술 먹고 도로에서 노숙하고 앞에서 어떤 얘기를 하든 적당히 흘려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그냥 나왔으니 됐어 얘들이 알아서 기겠지. 이런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제는 배후가 없다는 거다. 진짜 없어서 문제다. 배후가 없어서 구호 하나 맞춰서 소리내지도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6월 1일 새벽, 물대포를 맞으며 버틸 땐 우린 그렇지 않았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서도 비폭력을 외쳤고, 쫓아오는 전경의 방패에 찍히면서도 눈물흘리지 않았다. 시위대는 당당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집회에서 점점 사람이 많아지고, 경찰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전략을 썼다. 그러자 시민들은 두 종류로 갈라졌다. 한 편은 마치 소풍을 온 분위기이고, 앞의 사람들은 12시가 지나고 한시가 지나면 경찰의 무대응에 흥분해서 차를 흔든다. 그러다 결국 8일날 어디선가 들고 온 쇠파이프와 소화기를 쓰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거 실수 맞다. 그러면 그때 광장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대체 무얼 했나? 그들을 말리기보다는 트럭에 설치된 오마이티비 화면으로 먼 나라 중계를 보듯이 소화기 가루가 난무하는 현장을 감상할 뿐이었다. 이게 시위인가?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돌출하는 사람들은 제지시키면서도 끊임없이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느새 집회는 모여서 자유발언 좀 하고, 도로를 점거하며 가두 한번 하고 적당히 모여앉아 있다가 그냥 그렇게 끝나는 그런 것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경찰은 그런 집회를 특별히 제지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시위대가 도발에 넘어가자 그때서야 기다렸다는 듯 소화기를 뿌리고, 정당한 것처럼 몇 명을 연행했다. 나는 집에 와서야 내가 앉아 있던 바로 앞에서 한 시간 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움과 분노로 괴로워했다.
그리고 오늘이 왔다. 아마도 이번 사태에 가장 많은 인파가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인원이 많으면 뭔가 달라지겠지. 하지만 그런 기대는 점심에 컴퓨터를 켜자마자 무너졌다. 광화문 네거리엔 촛불집회에 나가고, 나가진 않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두 차단하듯 거대한 컨테이너 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물경 6미터는 되어 보이는 그 벽을 보며 나는 그냥 할 말을 잃었다. 직접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그 벽 앞에서 마치 관광이라도 하러 온 양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은 밧줄이 쳐 진 채 마치 폴리스 라인처럼 비폭력이라고 씌여 있는 라인이 있고, 그 안에 예비군이 있었다. 나는 한순간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뭐 하는 건가. 우리가 컨테이너 벽에 어떤 폭력을 가하길래? 우리는 오늘도, 이 많은 인원이 모여서도 그저 준비된 공간에서 그냥 그렇게 놀다가 가야 하는 건가. 너무 화가 치밀어서 걸어가는데 동아일보 일민미술관 앞에 잔뜩 쌓여있는 커다란 스티로폼이 보였다. 가로 1미터 50, 세로 1미터쯤 되고 높이는 50센티쯤 될 것 같았다. 굉장히 많았는데 아마 컨테이너 안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수량이었다. 안에 모래주머니를 채우느라 빼 둔 듯 했다. 그걸 본 순간 생각했다. 그래. 이걸 명박산성 앞에 쌓으면 어떨까.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자는 거 아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 못 올라가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라고, 올라갈 수는 있지만 비폭력이어야 하고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올라가지 않는 거라고. 너희가 치졸하고 야비하게 담장을 높게 쌓았지만 우리도 쌓을 수 있다고. 그냥 그거라도 보여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참 조낸 의미없고 유치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물론 옆 라인엔 전경 버스로 막아 두어서 오히려 전경 버스 쪽으로 쌓으면 돌파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얼마 전 폭력시위대 운운까지 얘기가 나왔는데 바로 그 다음 무리수를 두어 전경과 마찰을 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그렇기도 하고 광화문 정면에 쌓는 게 더 잘 보이잖아. 말하자면 이런 생각이었다. 넘어가고 아니고를 떠나 너희가 이렇게 막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궁리해서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명박이의 잔머리에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윗층 주민님과 함께 일민미술관 앞에 쌓여 있는 스티로폼을 내렸다. 너무 커서 의외로 무거웠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낑낑거리며 명박산성까지 들고 갔다. 좀비님까지 붙어서 셋이 나르다가 어떤 남자분이 도와주셔서 나는 앞의 길을 텄다. 그리고 예비군 라인 앞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 뒤 한시간 이상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다. 일단 이런 걸 어디서 준비했냐는 배후(아놔 ㅅㅂ) 얘기부터 인화물질이라 위험하다는 얘기 등등. 그러면서 사다리 갖고 오면 올라가도 된다는 얘기를 들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죽어라고 반박했다. 넘어가자는 게 아닌 위에 얘기한 것과 같은 생각이라고. 주변은 예비군님들이 스크럼 짜고 있으니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제지하면 될 거 아니냐고. 예비군들은 왜 지키고 있는 거냐고 비폭력의 범주 내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그걸 도와주고 시민을 지켜 주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목이 아프도록 설명을 하는데 나중엔 십라 내가 왜 이런 걸 생각해내서 이런 도돌이표 같은 얘기를 나눠야 하지 싶을 정도였다. 스티로폼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조중동에 빌미를 제공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궁금해졌다. 명백히 시민에 대한 폭력임에 분명한 명박산성 앞에 그보다 높은 걸 쌓을 수 있음에도 넘어가진 않겠다는 게 과연 폭력인가. 톡 까놓고 얘기하자. 조중동 눈치보면서 지금 뭐하자는 건가. 우리는 야간에 나온 것만으로도 이미 불법집회를 하고 있다. 그건 그만큼 우리에게 나와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인원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명박산성이나 구경하다 가자고? 그게 안타까워서 비폭력의 범주에서 의견을 낸 건데 그냥 이렇게만 있어도 충분히 압력이 된다고? 그 뒤 확성기에서 주최측은 사실상 이명박정권은 끝났으며 우리가 승리했다고 울부짖는다. 지금 장난하냐? 끝없이 설득에 설득을 계속했지만 많이 피곤해져서 그냥 이꼴저꼴 다 보기 싫어지는 상황에 그럼 뒤로 좀 밀어서 자유발언대를 만들면 어떠냐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그것마저 감지덕지한 마음에 반 포기상태로 찬성했고 다시 일민미술관 앞으로 가서 스티로폼을 두 개째 날랐다. 역시 도와주는 사람은 일행들 뿐이었다. 두 개째를 쌓자 다시 논쟁이 붙었고, 하나 더 날라와서 세 개로 자유발언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나긴 자유발언 끝에 다 같이 쌓기로 결정이 났다. 혹시나 올라간다는 오해를 살까봐 명박산성에서 3미터 떨어진 곳에서. 원래 내 계획은 컨테이너가 6미터고 스티로폼 높이가 50센티 정도니 아래부터 12, 11, 10 이런 식으로 차례대로 층계처럼 쌓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분으로 안전하게 방사선 형태로 옆을 더 쌓으면 어떨까 싶었는데 어느샌가 스티로폼 쌓기를 주도하고 있는 붉은 조끼의 여자에게 얘기를 해도 잘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그리고 끝없이 스티로폼은 올라갔고 붉은 조끼의 여자는 그 위에 올라가 아래 있는 시민들을 내려보았다. 확성기로 뭐라고 말을 했지만 높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저런 게 아니었다. 쌓고 나서 내려와 모두에게 얘기했으면 싶었는데. 우리는 못 넘어가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고. 어떤 상황이든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저 병신들은 컨테이너로 막을 생각은 했지만 그 안에 있는 스티로폼으로 더 높게 쌓을 수 있다는 건 생각도 안 했던 거라고. 저새끼들은 어릴 때 레고 한번 안 해본 모양이라고. 상상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인간이 결국에는 이기는 거라고. 그러니 패배감 같은 거 절대 갖지 말자고.
하지만 붉은 조끼의 여자는 내려올 줄 몰랐고 주변으로 카메라 플래쉬는 계속 터졌다.
그리고 나는 등을 돌린 채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컴퓨터를 켜자 참으로 많은 얘기가 있다. 스티로폼을 준비한 게 프락치의 소행이다. 일부러 불을 지르려고 하는 거다. 모든 게 음모다. 그리고 그 위에는 비명과도 같은 비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어도 그건 우리가 아니라고. 경찰이라고. 프락치라고. 하지만, 비폭력이란 말이 가장 힘을 발휘했을 때는 우리 위에 무자비한 폭력이 떨어지던 6월 1일 새벽 바로 그 때였다고 나는 믿는다. 부당한 폭력에 비폭력으로 대항하는 게 우리의 힘이고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엔진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시민이 무언가를 시도하려고만 해도 비폭력이라는 이름 아래 싹을 짓밟아 버리는 게 아닌가. 비폭력이라 외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타인의 시도마저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건 폭력 아닌가. 모든 걸 프락치 때문이고 경찰 때문이고 명박이 때문이라고 외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나. 하지만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우리 중 하나일수도 있다면 그런 사람을 감싸안고 말리며 그럴때일수록 더욱 더 목소리높여 구호라도 외쳐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오늘 비폭력으로 포장한 폭력을 본 느낌이다. 그래서 너무나 우울하다. 지금 말들이 많은데 이 글 때문에 쿨게이 쏘쿨병 사람들한테 졸라 까이는 거 아닌가 싶지만 곳곳에서 프락치가 주동한 거다 어쩌고 소리를 들으니 도저히 안 쓸 수가 없더라. 에라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까인다고 죽냐. 그렇다면 이명박은 지금쯤 원자단위로 작살났게.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난 다음에도 나갈 거다. 진짜 많이 실망했고 기분 더럽고 너무 화나고 완전 삐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또 보자. 이렇게는 안 끝날 거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by kyoko | 2008/06/11 03:53 | 촛불 | 트랙백(7) | 핑백(1) | 덧글(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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